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화강고래 Aug 27. 2024

1%라도 만족스러운 얼굴을 찾아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01

운전면허 갱신 안내를 받고 잠시 망설였다. 준비물로 사진 한 장을 제출해야 하는데 4월 초에 여권용으로 찍어놓은 사진이 생각났다. 6개월 이내 찍은 사진 한 장이 필요했다. 


그걸 쓸까? 새로 찍을까?


나이가 들면 사진 찍기가 싫다고들 했다. 젊고 생기 있던 얼굴은 세월 따라 사라지고 그 자리엔 칙칙한 피부바탕에 여기저기 늘어나는 주름을 보기 싫어 안 찍는 편이 낫다고. 꼭 찍어야 할 경우가 아니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까지 했다. 아직까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풍경을 배경으로 한 사진은 기꺼이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못난 얼굴이라도 내민다. 막상 사진을 보고는 못마땅해할지라도. 특히 딸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초등학교 졸업사진부터 시작해 학생증, 주민등록증, 여권, 운전면허증에 이르기까지 시기마다 얼굴만 단독으로 나오는 사진을 찍었다. 원하든 원치 안 든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가감 없이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 같아 변함없이 불편하다. 가끔 잘 나오거나, 보정 기술자의 노련한 솜씨 덕분에 흐뭇하게 만드는 사진을 받은 적도 있다. 진짜 어쩌다가. 


거의 10년 만에 올봄에 찍은 여권사진은 날 무참히 슬프게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니만 내 얼굴에서 병과 세월을 보았다. 미리 앞당겨 노화를 뒤집어쓴 덕에 광채 없고 마른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번 쓰고 말 사진이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사진관을 찾아 찍었더니 결과는 참혹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데, 괜히 사진관에 불똥이 튀었다. 화가 났다. 보정은 기본 아닌가? 보정에 익숙한 시대인데 알아서 안 해주네! 싼 게 비지떡이고, 잘못된 선택이었구나! 후회했다.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은 그깟 만원 차이로 내 밑낯을 마주하니 생각보다 쓸쓸하고 슬펐다.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인데 보정 안 한 얼굴이 왜 이리 낯설던지...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데, 역시나 혼자만 신경을 썼다. 그러면서 뒤따른 생각들... 이래서 주름을 댕기고 탱탱하게 주기적으로 돈 써서 관리를 하는구나. 주변에 보톡스를 안 맞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은 걸 봐도 그렇다.


피부과에 다닐 만큼의 여유로움이 없는 것이 1차적인 이유이지만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변함없다. 나이에 걸맞은 편안한 얼굴을 만들자는 나와의 약속을 뒤집고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투자해야 할까? 그건 아니었다. 잠시 텅 빈 헛웃음을 웃고는 정신 차렸다. 그래, 인위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움이 좋은데,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갑작스러운 변신은 불가능하나, 자주 볼 사진 속에서만이라도 생기 있고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차이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찍었다. 여권은 열어볼 일이 거의 없지만 운전면허증은 지갑을 열 때마다 앞으로 10년은 볼 것이기에, 그때마다 못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귀찮고 돈도 들지만 계속 마음에 안 드는 사진을 간직하지 않기로 했다. 여권 사진은 안경을 벗어야 했지만 신분증은 안경을 써도 되니 괜찮게 나올 것 같았다. 안경을 쓰고 찍었어도 사실, 보정 없이는 이전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돈 덕분인지, 기술력 덕분인지 얼굴에 살을 넣고 매끈하게 보정해 주니 나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면을 가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면도 걸맞게 가꿀 필요가 있다. 화려한 백합도, 장미도, 백일홍도 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부끄럽고 애처롭게 여기는 얼굴은 되지 말자고. 추레한 사람이 되지 말자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는 핑계로 화장기 없는 얼굴로 모자만 눌러쓰고 다닌 일상을 떠올렸다. 내면에 어울리는 외면도 가꿔야겠다. 큰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부터 떠올렸다. 건강하게 살을 찌우고 1주일에 한두 번은 얼굴에 마스크 팩이라도 올리면서 관리를 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어떤 것도 노력 없이는 얻을 수 없잖아. 그동안 내팽개쳐진 내 얼굴에 사과를 했다. 잘할게, 받아줄 거지?







작가의 이전글 아프기 적당한 때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