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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26. 2024

아프기 적당한 때가 있을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00

주말 저녁, 딸의 손에서 TV리모컨을 오래간만에 넘겨받은 남편이 채널을 돌리면서 가족들을 불러 모았다. 근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 학업 컨설팅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며 같이 보자고 했다. 물론, 예상대로 호응은 없었다. 우리 부부만 관심 있을 뿐, 아들은 이미 의도를 간파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기 방으로 직행했다. 초등학생 딸만 곁에 앉아 있었다. 그 학생의 꿈은 의대였고, 꿈을 이루기 위해 굳건하게 매일 새벽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교권에 있던 학생의 성적까지 공개되었는데, 한 학기만에 성적이 급하락한 원인을 이야기하는 타임이 있었다. 


아빠의 암투병 때문이었다.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에게 아빠의 암 진단과 수술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늦둥이 외동딸의 학원비를 대기 위해 나이 많은 아빠가 고생하다 병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자책으로 한동안 힘들었다는 고백에 출연진과 가족들은 동시에 눈시울을 붉혔다. 암이란 존재는 역시 대단했다. 아빠처럼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옆에서 딸이 불쑥 말했다. 

"우리 엄마는 암이 두 개였는데..."

"아빠도 엄마가 죽는 줄 알았어. 정말 무서웠어."

"아빠는 그래도 안 울었잖아. 저 아저씨는 우는데."

"... 너는 정말 많이 울고 찡찡댔어. 엄마 보고 싶다고 매일 울었는데 기억 안 나?"


TV를 보던 나도 둘의 대화에 귀가 쫑긋했다. 

"아빠가 너희들 앞에서는 못 운 거지. 울고 싶어도 혼자 울었을 거야. 

 요새도 아픈 부모를 위해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자녀들이 있네."




아들이 9살, 딸이 7살에 암이 나를 찾아왔다. 참 억울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데, 엄마손이 많이 필요할 때인데, 초등학교 고학년만큼이라도 커서 아팠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발병 시기를 놓고 이 생각 저 생각을 했다. 할 일이 많은 창창한 젊은 내 인생이 여기서 끝인가 싶어 하늘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고 어린 자식들 생각에 아리고 저렸다. 지금도 그때의 아이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지나칠 때마다 '참, 어렸구나!'가 절로 나온다. 저렇게 작고 여린 아이들을 떠나 병원에 한 달 넘게 입원해 있을 때 아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날 찾아 밤마다 운 기억밖에는 없는 것 같다. 


출연한 고등학생의 사연을 보니 사춘기 자녀도 부모의 병 앞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여리디 여린 아이였다. 갑자기 눈을 떴을 때 부모가 없다는 생각만큼 공포스러운 건 없을 것이다. 학업적인 측면에서도 충격의 여파가 쓰나미처럼 몰려와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며 이겨내기가 더 힘들겠구나 싶었다. 


일찌감치 암을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살게 되면서 등 떠밀려 경험한 일을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다니, 시간이 흐르고 내 마음도 많이 단단해진 것을 실감한다. 마음에 굳은살이 붙은 걸까. 20대부터 70대까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암이 불쑥 찾아와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이 아닌 내가, 내 가족이 몸소 겪고 지나가야 하는 터널 속 시간이기에 어떤 것과도 비교불가할 것이다. 70대 유방암 환자로 방사선과에서 만난 여사님을 봐도 그랬다. 그 연세면, 그래도 젊은 나보단 낫겠지라고 감히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자식을 독립시키고 부모로서 남은 큰 숙제를 끝냈기에 젊은 부모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덜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시기 또한 기력이 쇠하고 자식에게 부담이 되니 싫기는 마찬가지라고 감히 상상해 봤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선택해야 한다면, 매를 안 맞으면 좋겠지만, 맞아야 할 운명이라면 일찍 맞고 훌훌 털고 지나가는 게 나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나와 같은 답이었다. 자기들이 어려서 잘 모를 때 엄마가 아픈 게 나은 거 같다고. 이미 아파봤으니 더 이상 아프지 말고, 자기들이 큰 어른이 되어도 건강하게 옆에 있으라고. 우리가 힘겹게 경험했던 시간이 그저 슬프고 아팠던 시간만은 아니었다. 서로를 아끼고, 귀하게 여기면서 건강하게 오래도록 함께 살고 싶다는 가장 큰 소망을 가슴에 남겼으니 그리 절망스러운 비극적인 시간만은 아니었다. 앞으로 살아갈 우리를 위해 미리 경험한 지난 시련은 배움과 성숙의 시간이었음을, 살면서 두루두루 꺼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성장했다. 


너희들은 사춘기만 잘 보내면 된다고, 엄마는 걱정 없다고 안심시켰다. 엄마가 아팠어도 우리 애들은 의사를 꿈꾸지 않는구나!라고 같이 웃어넘기면서, TV속 학생이 꿈을 이루기를 응원했다.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가 한 명이라도 존재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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