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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Aug 24. 2024

전화벨이 울릴 때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99

이번주 내내 딸아이에게 불려 다녔다. 

신발주머니부터 학원교재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했다. 집에 머무르지 않는 시간, 학교나 학원에 가 있는 짧게는 2시간, 길게는 6시간 동안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다는 건 별일 없다는 희소식이다. 보통은 그렇게 일상이 흘러간다. 


한 달이 채 못 된 방학이 끝나고 몸과 마음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생각지 못한 전화벨에 놀라 무슨 일이야? 왜? 어디 아파?부터 묻고 목소리의 이상을 확인했다. 그러다 준비물을 빠뜨리고 나갔다는 사실에 잠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왜 안 챙겨서 귀찮게 할까? 그러다가도 뒤이은 아이의 말에 내 마음은 바로 누그러졌다.


"엄마, 미안해요. 숙제를 안 챙겨 왔어요."

"엄마, 신발주머니 좀 가져다주실 수 있어요?"


본인도 미안한지 평상시의 장난기는 온데간데없고 또박또박, 눈치 보는 게 역력하게 부탁조로 공손하게 얘기했다. 부랴부랴 챙겨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5분 거리인 학교 정문 앞에서, 도보로 20-30분 걸리는 학원 앞에서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아이에게 얼른 준비물을 건네고 집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엄마를 꼭 안고 싶었는데 바깥이라 못했어요."


그래, 중간에 엄마가 보고 싶어서? 내가 잘 있는지 확인? 하고 싶어서 나를 불렀어? 가끔 엄마 생각을 한다고 했던 딸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집에 있다가 네가 부르면 바로 나갈 수 있어 나도 다행이야. 언제라도 전화를 하면 슈퍼맨처럼 달려올 수 있는 엄마가 곁에 있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서로가 알면 됐지.


영유아기 때 아이들은 자주 열이 나고 아팠다. 근무 중에 아이들이 아프다는 전화를 받으면 매번 난감하고 무기력했다. 당장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갈 수 없어 혼자 발만 동동 구르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눈치 보면서 전화기를 들고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아이를 봐주시던 선생님에게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단호하던 원장님들도 내 사정을 알게 되면서 필요하면 근처 소아과에까지 데려가면서 여러 가지로 나를 배려해 줬다. 그런 때를 생각하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직접, 바로 필요한 순간에 지금처럼 갈 수 있다는 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더없이 감사하다.




전화가 울리면 보통은 긴장한다. 통화보다는 문자메시지가 익숙해지면서 더욱 그러하다. 루틴처럼 정해진 시간대에 오는 가족들의 전화가 아니면 걱정부터 앞선다. 엄마가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던 14년 전, 퇴근길에 받은 전화는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한다. 큰 아이를 낳기 한 달 전 퇴근길에 아빠로부터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엄마가 쓰러졌어,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다."

"네? 언제요? 어떡해요? 어디로 가요?"

"강북삼성병원으로 와."


다급한 아빠의 목소리에 내 가슴은 쿵쿵쿵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당황한 마음에 허둥 대면서일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임신 중이라 내 마음대로 뛰쳐나갈 수도 없어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렸다가 나선 용인에서 서울 강북삼성병원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퇴근시간까지 겹쳐 차 안에 앉아 신호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도로를 가득 메운 차만큼이나 숨 쉴 여유가 없었다. 당장 달려간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지만 그저 1분 1초라도 빨리 곁에서 엄마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게 무척이나 괴롭고 하늘이 무너지던 때였다. 그저 옆에 있고만 싶었다.





살면서 전화벨이 울릴 때 바로 달려갈 수 있는 경우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었다. 간단한 준비물을 갖다 주는 것마저도 외출 중이거나 집에서 다른 일을 할 때라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감안할 때 할 수 있을 때, 기꺼이 달려갈 수 있을 때, 감사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살고 싶다. 앞으로 내가 사는 동안 작은 것부터, 내가 할 수 있을 때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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