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첫 외박이니 내 자식들과 오랜만에 다 같이 밥 먹고 내 옷정리하고 오고 싶다."
그래서 엄마의 요청대로 했다.
뇌출혈로 오른쪽 편마비가 되어 장애인 진단을 받은 엄마는 어느덧 10여 년을 요양병원을 집 삼아 살고 있다.
남동생집 한편에 놓여있던 박스를 가져와 엄마의 옷을 같이 정리했다.
시간이 멈춘 옷들. 새삼스레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짠하다.
그 옷들과 함께한 추억만 남았을 뿐,
더 이상 미래가 없어 보였다. 엄마의 현재 모습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입밖으로는 꺼내지 않았지만. 아픈 노인이 되고 나서 엄마는 하루하루 누구보다 열심히 재활운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삶의 의지가 강해서 그나마 지금껏 버텨왔다. 그러나, 크게 달라질 미래가 없고 현상유지만이라도 하길 바라며 산다.
5년 전, 내가 울산으로 내려가면 엄마의 조그만 집이 정리될 것을 직감한 듯, 엄마는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에서 옷과 물건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이번에 정리하고 나니 달랑 리빙박스 하나만큼 남았다. 꿉꿉한 옷 곰팡이 냄새가 풍기는 낡은 옷들이 90퍼센트 이상 버릴 것 상자에 놓이고, 고르고 골라 한번이라도 입을 것 같고, 추억이 겹겹이 쌓인 옷가지들만 남았다. 낡았으니 버리고 다음에 새 옷 사 줄게라는 말과 함께. 그 옷들 중에서 트렌치코트 하나 챙겨 집에 가져와 드라이클리닝을 했다. 백화점 브랜드의 짙은 보라색 트렌치코트. 오랜만에 세탁했다. 박스 안에서 10년 넘게 오늘만을 기다렸을 거 같다. 엄마는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엄마의 옷만이라도 내가 구해준 것 같았다. 자식이 셋이나 있지만 집에 모시고 살 자식이 없으니 항상 죄스러운 마음뿐이다. 각자 사정이 있고 그나마 큰딸이며 제일 의지하는 나인데도 나는 엄마를 집에 선뜻 모시지 못했다. 지금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가슴 아픈 가족의 이야기이다.
코로나로 엄격했던 병원 외출도 이젠 웬만큼 가능하다. 여러 사람 손을 빌려 멀리 가는 게 당장은 버거울 거 같아 우선은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했다. 엄마가 좋아하던 트렌치코트를 환자복 위에 걸치고 병원 근처라도 산책해 볼 생각이다. 짧디 짧은 화창한 이 가을에 엄마가 좋아하는 커피우유를 함께 마시면서 소중한 우리만의 추억하나 만들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