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08
연달아 두 번의 암 수술을 하느라 한 달 넘게 집을 비우는 동안 어머니는 울산집에 어쩔 수 없이 머무르셨다. 생전 처음 와본 낯선 도시에서 아들과 손자, 손녀의 일상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하나로 심약하신 어머니는 반강제적으로 울산살이를 하셨다. 갑작스러운 울산행에 대해 시이모님, 즉 어머니의 여동생에게는 며느리가 출근을 하게 돼서 적응하는 동안 잠시 아이들을 봐주러 간다는 이유를 대셨다고 했다.
"난, 내 며느리 아프다는 이야기가 하기 싫어. 좋은 소식도 아닌데 동네방네 떠들게 할 수는 없잖아."
어머니는 본인의 여동생에게조차 숨기셨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당시에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내가 해외출장을 갈 적에만 손주들을 봐주셨던 분인데, 그런 말로 얼버무리셨다는 게 서운함마저 들었다. 갑자기 숨기고 싶은 고장난 기계라도 된 듯, 내 잘못이 아닌데 굳이 숨길 필요까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워낙 자매 간에 쌓인 게 많아 편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동생한테까지 숨겨야 하나 싶었다. 듣는 내 맘은 편치 않았다. 어머니의 완고한 말투에 어떤 말도 찾지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 후로 5년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의 마음은 변함이 없으신 것 같다. 최근 본인의 치매 진단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내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도 우리 가족만 아는 사실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시이모님을 비롯해 어느 누구에게도, 언제라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성당에 나오시는 분 중에 치매를 앓고 계신 분이 있는데, 그분의 옷차림이 계절과 다른 것을 보고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려 마음이 아팠다고.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난, 내 병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었나 생각해 봤다. 굳이 동네방네 떠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정하고 숨기지도 않았다. 가족과 친구 한 두 명 정도에게만 알렸던 것 같다. 인간관계가 넓지 않기도 했지만, 연락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화해서 "암, 암 걸렸어요!"라고 할 필요는 없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내 마음을 편히 열어 보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전했다. 아이들 친구 엄마 몇 명에게는 사정상 양해를 구하기 위해 설명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마음속 깊은 곳을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건, 아픈 사람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따져보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꼽는다면, 가족을 비롯해 몇 사람 없는 것 같다. 앞에서는 걱정하는 듯하지만, 결국 뒤돌아서면 술안주처럼 화젯거리가 되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아셔서 그렇게 말씀하셨나 보다. 서운했던 감정은 시간과 함께 희미해졌다.
내가 강조하는 건 딱 두 가지다.
첫째, 유방검사는 꼭 초음파를 통해서 해라. 건강검진에 초음파를 추가해서 하든지, 가까운 동네 유방외과에서라도 초음파로 정기적 관찰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동생과 친한 지인들에게 잔소리처럼 한다.
둘째, 안과 검진을 권한다. 40대 이후, 특히 고도근시인 사람의 녹내장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보통은 잘 모른다. 나도 몰랐으니까. 정상안압 녹내장 발병에 대해 이야기하며 1년에 한 번 정기검진이 필수라고 약간은 무섭게 이야기한다.
아픈 건 죄가 아니다. 선택해서 아픈 것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아프면 고통을 느끼고 몸으로 기억한다. 그 기억을 혼자서 꽁꽁 숨기지 않게 되었다. 손을 뻗는 지인들의 손을 친절하게 잡아주고 힘을 주는 일을 하는 나로 바뀌었다. 숨기기 않고, 당당하게, 도움이 될 때마다 꽤 흐뭇하다. 억울하고 쓰라린 경험마저도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병 앞에서 어느 정도 평화로워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