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가 베일을 쓴 듯, 뒤로 살짝 묶여 있다. 흰색 베일이 항암으로 사라진 맨머리를 우아하게 덮었다. 민트색이 아닌 블랙 의상을 입고 찐 녹색 장화를 신었다. 부츠가 아니라 장화?! 다부지게 오뚝한 코와 깊은 눈매만 보이게 핫핑크색 마스크를 쓰고, 길게 늘어뜨린 번쩍이는 귀걸이가 움직일 때마다 찰랑거렸다. 손목에도 메탈 느낌의 큼직한 팔지가 보였다.
분당대학병원에서 지하철역까지를 운행하는 마을버스를 자주 탔지만 이렇게 화려한 차림새를 한 환자 승객은 처음이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딱 보면 항암을 경험한 환자인지 여부가 눈에 보일 정도가 되었다. 개인적 느낌상의 통계치로 보면 95퍼센트는 나이불문하고 나처럼 모자를 쓰고 다닌다. 나도 그들도 철에 따라 바꿔 쓰지만, 가끔 똑같은 모자를 쓴 사람을 보기라도 하면 살짝 숨고 싶다.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대며 짧게 자라고 있는 머리카락을 과감하게 드러내 보이는 사람들이 2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나머지 3퍼센트가 두건을 쓰고 다닌다. 무채색 두건이나 화려한 색감의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미용실에서 파마를 말고 나왔던 옛날 엄마들처럼 쓰는 사람이 가끔 보인다.
눈앞에 보이는 저분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빈자리가 꽤 남아 있는데도 꼿꼿이 서서 가는 그녀를 뒷좌석에 앉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차원의 꾸밈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걸 보면 아프기 전에도 취향대로 거침없이 살았던 분일 것 같았다. 아니면 아프면서 전에 억눌렀던 표현의 욕구를 원하는 만큼 발산하며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기로 결심했을까? 말 한마디 안 해보고 겉모습으로 혼자 소설을 쓰고 있었다. 감히 말을 걸어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하자 종점인 듯 우르르 다 내리는 사이 순식간에 사려져 버렸다. 허상을 본 듯 잠시 두리번거리다 내 갈길을 갔다.
어떤 사연이 있든 상관없다. 그저 오늘을 원하는 대로 사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무채색 대중과 섞일 수 없게 형형색색으로 도드라진 모습이 순간 너무도 낯설어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나도 모르게 응원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흰색 베일을 쓰고 당당하게 서 있던 그 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