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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Sep 12. 2024

저녁 산책이 얼마나 좋은데!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10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을 보며 물었다.


"어젯밤에는 푹 잤어? oo가 늦게 자서 방해되지 않았어?"

"걷고 자서 그런지 안 깨고 잘 잤어."

"역시, 거봐! 걸으니까 좋지?!"


아이들에게 내가 옳다는 것을 확인시키듯, 남편에게도 비슷한 톤으로 말해버렸다. 본인의 몸이 먼저 알아차렸겠지만, 놓치지 않고 한번 더 각인시켰다. 


이번주부터 시작했으니 작심삼일의 3일이 지났다. 퇴근 후 마냥 귀찮아하는 남편을 집밖으로 끌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배는 부르고 피곤이 몰려와 집에서 마냥 쉬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더 이상은 가만 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당뇨 진단을 받고 노력해서 빠졌던 살이, 반갑지 않은 그 살이 어떻게 알고 다시 찾아왔다. 인천으로 출퇴근하면서 걷는 시간보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진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몸이 숨기지 않고 보란 듯이 말해줬다. 울산에 살 때만 해도 도보로 출퇴근을 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멀리 갈 필요 없이 아파트 산책로만 5바퀴 정도 걸어도 하루에 만보는 걸었던 사람이었는데. 환경이 바뀌니 습관도 저절로 바뀌었다. 


작년에 울산에서 다시 용인으로 이사 오면서 그동안은 나 혼자 걸었다. 4.9킬로 정도 되는 탄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아파트 숲 사이로 이마저도 없었다면 난 어디로 갔을까? 보통 반 정도 걷고 돌아오면 40-50분 정도 소요되어 적당하다. 사는 곳이 바뀌었어도 4년간 다져온 산책 루틴을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변화된 환경과 상관없이 의지와 습관 덕분에 가능했다. 보통 8시에서 9시 사이, 저녁식사 후 편한 복장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가면 환한 달빛과 가로등 아래서 걷고 뛰는 사람들로 언제나 탄천길은 비좁다. 혼자 나온 덕분에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음악에 맞춰 힘이 실린 발걸음은 빠른 속도를 내주고 몸 전체에 에너지가 솟아난다. 


잔소리처럼 말로만 하는 것보다 데리고 나가기로 결심했다. 혼자서 걷는 즐거움도 크지만, 같이 다니면서 남편의 저녁 산책습관을 심어주고 싶었다. 몇 번 거부하더니 이번주부터는 순순히 따라나섰다. 당뇨가 있든 없든 식후에 잠깐이라도 걸으면 혈당 조절에 효과가 있다는 건 살짝 진부한 건강상식이 되었다. 알지만 안 하고 순간의 편안함을 찾는 그의 본능이 순행하도록 모른 척하면 안될 것 같았다. 옆에서 살짝 밀어주기로 했다. 혼자만 건강을 챙기고 남편을 나 몰라라 하고 내버려 두기에는 그의 나이와 뱃살이 나보다 훨씬 많다. 더구나 당뇨도 있다.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054611.html



식후 혈당관리와 함께 서로의 하루를 돌아보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덤으로 주어졌다. 지역본부에서 근무하면서 본사 근무때와는 다른 경험을 공유하자 부부의 대화폭도 넓어졌다. 지역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시설방문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자칫 평범하고 단조롭게 보이는 우리의 보통의 날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서로에게 감사한다. 애틋하게 고마움을 전한다. 반복되는 화면을 보듯, 비슷한 시간에 걸으면서 마음속으로 매번 나에게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튼튼한 두 발로 사람들 속을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말이다.


오늘밤도 내일밤도 앞으로 계속 꿀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운동화를 신지 않으면 몸이 먼저 현관문을 밀고 나가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 남편도 그렇게 될 것이다. 탄천길이 나를 살게 해 주었고, 이제 남편도 살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에게 식후 걷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니까! 



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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