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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Sep 13. 2024

"시집 잘 왔구나"를 실감하는 명절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11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 다가오면 시댁과의 갈등, 며느리의 고충이 여전히 관심을 끈다. 아무리 AI 시대가 왔다 해도 고부간의 갈등과 명절 스트레스는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안타깝게도, 명절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따라다니게 될 것 같다. 나는 예외다. 명절이 되면, 새삼스레 시집을 잘 왔다고 느낀다. 살짝 무뚝뚝해 감정표현이 서툰 시어머니는 그렇게 생각 안 하시겠지만 이기적인 며느리로서의 입장은 그렇다. 불가피한 친정 상황을 받아들여 며느리를 자유롭게 풀어주신 시부모님의 넉넉한 마음에 평상시보다 몇 배 더 감사하는 시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나 아직까지 흔들리지 않는 시부모님의 신체적, 경제적, 심리적인 굳건함에 깊이 고개를 숙인다. 고령으로 신체적 노화는 진행 중이나 두 분의 독립적인 생활 덕분에 친정엄마에게 신경 쓸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시댁이라도 잘 버티고 있어 내가 숨 쉴 수 있다. 


결혼 초, 번듯한 친정이 존재했을 때만 해도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다. 

평생 제사를 지내느라 고생한 엄마와 달리 시댁은 천주교를 믿으시니 제사를 지내지 않아 며느리로서 편할 것 같았다. 남편과 손아래 시누이만 있으니 동서와의 갈등이 없어 이 또한 편할 것 같았다. 살아보니 두 가지는 확실하다. 차례상 부담이 없다.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명절 음식을 하느라 기름 냄새를 맡으며 전을 부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시누이가 명절이든 평상 시든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 명절이면 우리 시간에 맞춰 시누이네 식구가 온다. 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자주 만나기는 어려워 아이들이 잠깐이라도 명절 분위기를 느끼라고 시간을 맞춘다. 그게 다다. 


여동생도, 시누이도 손아래 동서와의 미묘한 신경전으로 명절 스트레스 이야기를 단골 화젯거리로 꺼낸다. 그때마다, 


"난 여우 같은 동서 있었으면 진짜 힘들었을 거 같아."


라고 대놓고 이야기한다. 나에게는 여우 같은 시누이와 여우 같은 여동생이 있는 것만으로도 때론 버거운데, 그들이 버거워하는 동서관계를 잘 해낼 자신이 없다. 물론 잘 맞는 동서관계도 있겠지만, 주위에 보면 그런 이상적인 동서관계는 없다. 


보통은 시댁에 먼저 가고 친정에 간다. "전통적"으로, 며느리는 그렇게 한다. 친정이 건재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시댁 가서 간단하게라도 명절 준비하고 추석날 오후 늦게 친정 가는 식의 관습을 따라서. 우리 집은 10년 넘게 친정 먼저, 시댁 순이다. 주변에서 그런 시댁이 어디 있냐고 감탄과 부러움을 쏟아낸다. 맞다, 나에게는 쿨한 시댁이 있다. 엄마가 2박 3일 외박하는 동안 나도 같이 외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꼭 그렇게 해야 하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어떤 때는 스스로 강박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남동생이 있는데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편마비로 생활하는 엄마도 나도 서로 옆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남동생 집에서 세 번째 보내는 명절이다. 그전에는 좁고 낡은 집이라도 엄마집에서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했다. 명절에만 가는 집이라 청소, 빨래, 음식 등을 몰아쳐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몸이 참 힘들었다. 이제는 반대상황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설레고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 준다고 눈치 보느라 엄마 마음이 오그라들다 못해 쪼그라들까 봐 따라나선다. 같은 자식이지만, 유독 나만 부모처럼 의지하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덜 상처받게 하고 싶어서.


올해도 변함없이 동생들과 엄마의 외박일정을 잡았다. 코로나가 재유행이라고는 하나 다행스럽게도 요양병원 외박통제가 사실상 없는 덕분에 엄마의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리던 공식적인 외박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것 같다. 주말까지 포함하면 5일이라는 긴 연휴임에도 병원에서 허락된 48시간에 맞춰 각자의 입장에 맞춰 날짜를 확정했다. 연휴시작 아침부터 연휴 마지막날 아침까지. 그렇게 정리를 마치고 나서야 시댁에 가는 날짜를 정하고 어머니께 전화드렸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매번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의례 하는 일이라 어느 누구 대놓고 뭐라고 하지 않지만 시댁의 눈치를 보는 며느리이기에, 어쩔 수 없다. 


"상황에 따라 하는 거지. 신경 쓰지 마."

라고 쿨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신 시어머니의 말씀은 한결같으시다. 


한 번은 이런 말씀을 붙이셨다. 

"나중에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때 도와줘."


지금은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친정엄마만 바라보는 며느리이다. 그런 나를 보는 시어머니의 마음은 잠시 나중을 위해 저금해 두기로 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그런 상황이 오면 할 것이다. 당연히. 


앞으로 몇 번의 명절을 더 보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남동생 집에서 보내는 명절이 편할리 없지만 그래도, 어쩌다 나오는 외박인데 콘도에 놀러 온 것처럼 신나게 놀다 가자고 엄마의 기분을 한층 업시키는 말을 건네며 스스로도 그렇게 자기 암시를 한다. 자식들에게 미안해하는 엄마도, 시댁에 죄송스러워하면서도 엄마에게 큰소리치는 나도, 친정엄마만 보는 나를 보는 시어머니도,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무탈하게 2024 추석을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 쿨한 시댁 덕분에 내가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감사한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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