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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Sep 19. 2024

마음을 모아 보름달을 만든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12

추석날 밤, 올케와 나 그리고 딸아이는 2층 방 안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누었다. 1층에서 자는 엄마와 남동생이 깰까 봐 소곤소곤 이야기를 이어가며 피곤해도 그냥 자기에는 어쩐지 아쉬운 밤을 보냈다. 10시가 넘어 보름달이 생각났다. 얼른 테라스로 나갔지만 구름에 잔뜩 가려 희미한 빛만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 보름달 봐야 하는데.

보고 싶은데.

구름이 다 가렸네.

왜 가렸을까. 오늘 같은 밤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잠자리에 드려는 순간 올케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안방 창문 너머에서 환하게 빛났다. 태양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금빛으로 눈부셨지만 주변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빛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유독 추석에 보름달을 보고 싶은 우리 마음을 어떻게 알고 구름들이 자리를 내주었는지, 구름에게도 고마웠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 같은 강물처럼, 거울처럼, 우리 셋은 순식간에 조용히 달을 바라보고 소원을 빌었다. 어떤 마음으로 달을 바라보았는지 직접 묻지는 않았다. 각자 마음속에 고이 간직했다.


마음과 마음이 모여 올해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을 만들었다. 우리가 만든 추석을 되돌아봤다. 태양 같은 엄마와 그녀를 둘러싼 행성 같은 삼 남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모였다. 2박 3일을 함께 하니 보통의 명절풍경 그 이상이다. 구성원 하나하나의 마음과 행동 조각을 붙여 만들었기에 귀하고 특별하다.


올케 덕분이다. 아픈 시어머니와 시누이를 받아주는 따뜻한 그 마음 덕분에 외박이 가능하다. 이것도 고마운데, 차례까지 지내준다. 힘드니 차례 지내지 말라고 했지만 막상 상을 차려주니 모두가 싫어하지 않았다. 어쩌면 속으로는 은근히 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양가감정을 느꼈다고 서로 실토하며 며느리의 정성과 노고에 모두가 감동고 감사했다. 홀로 외롭게 며느리의 제사의무를 30년 넘게 묵묵히 견뎠던 엄마는, 시어머니로서 며느리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갖출 건 다 갖춰 눈앞에 선보인 차례상을 보며 연신 고맙다, 고맙다 하셨다. 조상님과 조부모님 그리고 아빠께 술 한잔씩 따라드리고 자식과 손주들이 절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안함과 흐뭇한 마음이 교차했다. 제발 잘 드시고 본인을 데려가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자식들에게 더 큰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 그 절절함을 숨기지 않으셨다.

 

남동생 덕분이다. 휠체어로 이동하는 엄마가 차에 오르내릴 때마다 모두가 긴장한다. 안아서 들어 올릴 만큼 아담한 체격이 아니라 불안해하지 않고 스스로 탈 수 있도록 잘 부축해야 한다. 왼발로 지탱하고 섰다가 그 발  SUV 차 뒷좌석에 올리면 남동생이 엉덩이를 들어 올려 반쯤 안아 태운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올라탈 때마다 가슴이 츠러들고 한 번에 발을 못 올리면 몇 번이나 시도하며 진땀을 뺀다. 예전 카니발 차량일 때는 뒷좌석이 높아 타기에 더 불편해도 휠체어를 그대로 태웠다. 이제는 작아진 차로 인해 엄마는 쪼금 수월해진 듯하지만 매번 휠체어를 접었다 폈다를 반복해야 한다. 아들의 애쓰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는 자신의 존재에 미안해한다. 둘을 지켜보는 내 마음도 같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딸인 나는 옆에서 분위기를 맞춰주는 정도의 역할만 한다. 내 몸이 성했을 때는, 엄마집에서 명절을 보냈을 때는, 휠체어도 밀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차례도 지내고, 음식도 했지만, 이제는 뒷방의 늙은이처럼 한걸음 물러나 있다. 나와 딸이 엄마와 올케의 치어리더가 되어 열심히 놀다 온다. 같이 커피 마시고, 밥 먹고, 과일 먹고, 이야기하고, 산책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여동생은 시댁에 가야 하는 관계로 나처럼 오래 머무르지는 못하고 잠시 있다가는 정도에 그치지만 그래도 명절이라는 주어진 시간의 일부를 보낸다.


추석 다음날 헤어지면서 딸아이가 말했다. 


"허무한 거 같아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속상해요. 

 학교에서는 시간이 안 가는데, 이런 날에는 1시간이 1초보다 더 짧은 것 같아요. 

 아휴. 내년 추석을 언제 기다려요!"


함께 한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우리 모두 이따금씩 속으로 힘들다고 느꼈을지라도 딸아이의 입을 통해 모두가 잘 보냈다는 총평을 들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처럼, 힘들어도 엄마를 위하는 우리로 남아있기를 바랐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빌었다. 함께하는 시간만이라도 투덜대거나 힘들어하지 말기를 바랐다. 추석을 보내자마자 내년 추석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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