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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Sep 25. 2024

엄마라서 그래.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15

집에 올 시간이 지났는데...

한 시간도 더 지났는데...

전화는 왜 안 받지?

오빠가, 오빠가, 아직도 집에 안 왔어. 전화도 안 받아. 


6시간 넘자 시계를 보고 또 보고, 전화를 하고 또 하고...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만 갔다. 6시 반이 되자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고, 얼굴을 보자마자 어떤 말보다 아들 걱정부터 나왔다. 


"00가 안 왔어.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연락 없이 집에 안 온 게 처음이라 걱정이야. 세상이 험한데, 무슨 일 없겠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남편은 소파에 앉더니 위치 추적으로 아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학교 근처인 것도 같고, 학원 근처인 것도 같은데. 너도 패밀리 링크 앱 깔아서 확인해."


그 순간, 아들에게 카톡 메시지가 왔다.

"학원에서 공부하는 중이에요."


별일 없이 무사하다는 메시지 덕에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 화났으니, 네가 알아서 눈치 챙기면서 숙제해라."


말없이 밥을 차리고, 밥 숟가락을 뜨는 중에 남편은 딸에게 슬쩍 말했다. 대충 먹고는 저녁 산책을 나섰다. 별 말없이 걷기만 했다. 기운도 없고, 할 말도 딱히 없었다. 옆에서 남편이 물었다. 


"집에 오면, 뭐라고 할 거야?"

"걱정했다고. 다음부터는 전화를 못하면, 메시지라도 보내라고 해야지. 그래야 걱정 안 한다고. 내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한다고, 걔가 듣겠어?"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화를 내봤자, 공감은커녕 기분만 나빠할게 뻔했다. 자라면서 깨달았다. 공감능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다는 것을.


40여 분간 걷다 보니 화가 씻겨나가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와 설거지를 했다. 


10시가 넘어 현관문이 열리고, 아들은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실로 와서 잘 다녀왔다고 이야기했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었다. 그렇게 집안일을 마칠 때까지 집안은 고요했다. 


"엄마가 엄청 걱정했어. 엄마한테 가서 죄송하다고 이야기해. 학원으로 바로 갈 준비는 하고 갔니?"

"네."

대화의 끝이었다. 둘 다 똑같이 어떻게 저리도 감정의 동요가 없을까 싶었다. 끼어들어 무슨 말이라고 할까 싶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아들에게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기대하는 것도 의미 없는 혼자만의 발광처럼 처량하게 느껴져서 싫었다. 


아들은 등교 때부터 집에 들르지 않고 학원으로 바로 갈 계획이었다. 집에 있는 나에게 말하지 않은 거였다. 그 순간, 아들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자식을 손님처럼 대하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거 같은데, 이건 손님보다도 더한 사이 같았다. 어떤 형용사로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었다. 산책 때 준비했던 말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그렇게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잘 자라는 인사 없이 각자 잠자리에 들 줄 알았다. 평소처럼 자기 전에 렌즈를 끼는 것도 넘길 줄 알았는데, 남편이 데리고 나와 말없이 기계적으로 렌즈를 끼워주었다. 


다음날에도 아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역시나 나 혼자 걱정하고, 화나고, 속상해한 거였다.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없었던 말에 서운했다. 아쉬웠다.


첫 번째는 "엄마, 학원으로 바로 가요."

두 번째는 "엄마, 연락미리 못해서 죄송해요."


며칠이 지났다. 겉으로 보기에 아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었다. 남편은 지나가는 말로, "엄마가 아직도 화났어."라고 했지만, 아들도 나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스스로 받아들이고 평정심을 찾았다. 아들이 말없는 남자가 되어가고 있다. 남자들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내 주위 남자들처럼 어쩌면 아들도 그런 남자가 되어 가는 듯하다. 엄마의 아들인 동생도 엄마만 걱정시키고, 본인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남편도 시어머니에게 무심하다.


"엄마니까"라는 엄마의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엄마니까, 엄마의 마음은 그래"라는 표현이 가끔은 자식을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 엄마의 딸이라 나도 모르게 그런 게 아닐까라는 반성도 슬그머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들이 커가고 있는데 아직도 아이취급하는 건 아닐까. 말수가 적고 잔소리를 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대충 키우는데도 엄마노릇은 마음대로 잘 안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약간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구나. 그리고 남편에게도 솔직히 이야기했다. 거리 두기를 하는 게 내가 살 길인 것 같다고. 앞서는 걱정은 줄이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식이 있어 일상이 드라마틱하다. 자식이 있어 감정은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멀미가 나지 않게 한층 더 내 마음을 붙잡고 조절해야겠다. "엄마니까" 시작부터 쉽지 않을 텐데라는 내면의 소리도 들린다. 그래도 노력이라도 하면 덜 힘들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자식이 전화를 안 받으면 온갖 시나리오를 쓰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노력할 것이다. 없으면 얼마나 단조롭겠어. 무자식이 상팔자인가 싶다가도 무자식에 눈물짓는 올케가 자주 떠올라 나를 달랜다. 오늘은 또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지 기대된다. 덤덤하게, 별거 아니게 받아들이는 수행을 오늘도 계속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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