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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Oct 07. 2024

라면이 좋은 걸 어떡해.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22

라면을 먹기 위해서라면, 무뚝뚝한 아들도 딸처럼 부드러운 표정으로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왕뚜껑을 먹더니 요새는 너구리 매운맛을 즐겨 먹는다. 두 살 아래인 딸은 한 발짝씩 늦게 오빠의 길을 따라가듯, 왕뚜껑에서 너구리로 덩달아 환승했다. 


보글보글 라면이 끓으면, 어느새 옆에서 지켜보며 행복해한다. 빨리 먹고 싶다고, 언제 되냐고, 냄새에 중독성이 있다고 쉬지 않고 이때만큼은 둘 다 나불댄다. 특히 아들이 그렇다. 



고작 인스턴트 라면 한 그릇인데, 식탁에 마주하고 앉으면 어떤 음식보다도 경건한 자세로 젓가락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한가닥씩 아껴서 먹는다. 후루룩 먹었던, 그렇게 먹어야 제맛이었던 것 같은데. 저렇게 먹어서 라면 맛이 느껴질까 싶을 정도다. 정성이 가득한 산해진미도 라면을 따라올 수 없다. 진심으로 집중해서 먹는다. 라면발 관찰자가 따로 없다. 


라면이 그렇게 좋아?

그럼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몸에 좋은 음식이면 매일 먹을 수 있는데.


식재료비를 절약하고 엄마의 요리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덤이요, 손쉽게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음식 중의 음식! 그런데, 엄마는 주면서도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어쩌나. 한 달에 한 번을 시도했다가 실패, 2주에 한번, 이제는 1주일에 한번, 간절히 부탁하면 한번 더 추가로 라면을 준다. 기름에 튀긴 면이고 수프에 나트륨이 많이 들어있다 해서 성장기 아이들에게 자주 주자니 어쩐지 미안한데, 기분전환을 위해서는 이보다 가성비 좋은 한 끼 식사는 없는 것 같다. 나도 학창 시절에 너구리에 계란을 풀어 먹는 걸 좋아했었다. 두꺼운 면발은 쫄깃하고 얼큰한 맛에 취해 먹는 순간만큼은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씻어줬다. 너구리 사랑이 아들에게도 전해진 걸까? 땀 흘리며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좋으면서도 라면만큼 다른 음식은 안 먹으니 속이 상한다. 골고루 먹고 쑥쑥 크는 것도 엄마의 헛된 꿈인가도 싶다. 이왕 먹는 거 부족한 영양소를 첨가해 먹으면 낫다는 기사를 보고 얼른 저장해 두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9473



문제는, 아이들이 계란, 치즈, 두부, 팽이버섯 같은 재료를 추가로 넣는 것을 허용할지, 안 먹겠다고 손사래를 칠게 눈에 선하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안 하고 포기하기엔 아쉬우니 슬그머니 가끔 넣어봐야겠다. 동시에 세상은 넓고 라면도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라면 맛을 알아가는 이때에 이왕이면 너구리 말고도 다양한 라면맛을 탐구해 보는 기회도 같이 챙겨주면 한 번을 먹더라도 더욱 행복해할 것 같다. 내가 안 먹는다고, 건강한 음식만 먹어야 한다고 고집할 수는 없다. 집에서 안 먹는다 해도 집 밖에서 먹을 테니까. 라면은 사랑할 수 만도, 미워할 수도 없는 특별한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라면, 참 맛있지! 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았는데, 한국인은 말할 것도 없지! 나도 모르게 침이 슬쩍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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