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친구가 숙제하러 온다고 자기 방과 거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옷걸이에 대충 걸려있던 옷무더기가 사라지고 어질러진 책상도 말끔해졌다. 나도 덩달아 책탑이 쌓여있는 컴퓨터책상을 비롯해 거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가족이 아닌 외부인이 집에 온다는 건, 옷으로 가려진 속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여전히 부담스럽다. 사는 그대로 보여주자니 남의 눈이 무섭고 미뤄둔 것들을 정리해야 하니 귀찮기도 하다. 그런데 가끔은 누가 찾아와야 정신을 차리고 바짝 정리를 하니 좋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사는 공간이니만큼 항상 말끔하게 정리정돈을 해놓고 살면 기분이 좋을 텐데 쫓기듯 할 때마다 감탄과 반성이 동시에 찾아온다.
큰아이 1학년때 반엄마들은 삼삼오오 모여 살짝 친해질 분위기가 느껴질 때쯤 서로의 집에 초대해서 애들을 놀게 했다. 당연히 엄마들도 함께. 초대받은 사람들은 간식거리를 사들고 가서 차려놓은 음식과 함께 먹으며 애들 키우는 이야기를 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눈으로는 그 집을 스캔하고 분위기를 파악했다. 요리에 진심이 느껴지는 집, 교육에 치중한 집,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집, 가구와 인테리어에 힘을 준집 등엄마의 외적인 모습과 사는 집의 분위기는 오묘하게도 일치했다. 어쩌면 저리도 집이 주인을 닮았는지, 새삼 놀랐다. 잘 꾸며진 집을 보고 올 때면 머릿속에 보고 온 집과 우리 집이 자연스럽게 비교되면서 살림을 어지간히도 못하나 싶어 반성을 하곤 했다. 반대로 아이 친구 엄마들이 방문할 때면 최대한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그들을 맞이했다. 사실 내 모습이 화려하지 않았기에 그들도 큰 기대를 하지 않은 듯 보였고 털털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하며 첫 아이의 1학년을 보내고 난 뒤, 울산으로 이사 가서는 코로나시기와 겹쳐 아이 친구집에 가는 일이 없었다. 우연히 딸아이가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친구와 친해져 서로의 집에서 자주 숙제하고 놀았다. 그 집 엄마와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집을 가끔 찾았어도 큰 부담은 없었다.
첫인상이 중요하듯, 평가받는 위치에 놓일 때 집을 보여준다는 건 부담중 부담이었다. 남의 평가가 두려웠다. 집을 꾸미고 정리하는데 시간을 들이지 않고 살았음에도 인테리어라고 할 것 없는 평범한 집에서 사는 내가 집으로 평가받는 것 같아 불편했다. 아이 친구엄마들과의 낯선 만남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탔지만사람을 알고 나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뒤돌아보니 남도 아닌 시어머니가 집에 오실 때 가장 열심히 정리정돈을 했다. 아들집이든 딸 집이든 본인이 원해서라기보다는 애들을 봐주려 할 수 없이 오시곤 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5살, 7살이 돼서는 안 오셨지만 그전까지는 일 년에 두세 번 집에 오셔서 며칠간 애들을 챙겨주셨다. 출장준비를 하면서도 어머니가 내 살림을 어떻게 평가하실까에 지레 겁먹고 집안을 정리하느라 새벽에도 맘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물건을 쉽게 버리며 정리하는 습관이 몸에 밴 어머니가 오셔서 속으로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실까 무서웠다. 한 번도 "잘하고 사네"라는 평가는 받은 적은 없었다. 매번 출장 후, 집에 오면 말대신 정리된 흔적만 남아있었다. 낡은 건 사라지고 새것이 자리를 잡고 있거나 지저분했던 곳이 말끔해져 있어 편치 않았다. 다음 출장에는 또 뭐가 정리될까도 은근히 신경 쓰였다. 보통은 내가 피곤할까 봐 얼굴도 안 보고 댁으로 돌아가시면 전화로 감사인사를 드렸다. 친정엄마여도 집이 지저분하면 신경 쓰인다는 시누이의 말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살림 못하는 며느리라는 인상을 남긴 후 어느 순간 내려놓았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혼자 모든 걸 하기에는 체력도 시간도 늘 부족했다. "눈에 보이면 그냥 정리하면 돼."라고 아주 쉽게 생각하시는 분에게 주저리주저리 변명 같은 말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남매가 같은 아파트에 사니 오실 법도 한데, 작년에 한번 시누이네 집들이 때 잠깐 들르고서는 집에 오시지 않는다. 자식들이 부모님 댁으로 찾아가니 굳이 자식집에는 안 오신다. 이제는 오신다 해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세월의 힘으로, 나를 아시고, 나도 어머니를 아니 오신 다해도 걱정 없다.
여전히 모델하우스 같은 집을 방문하면 입이 떡 벌어지고 부럽긴 하다.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니 잠깐 감탄한다. 좋다! 멋지다! 기분 좋게 얘기해 준다. 사실이니까. 며칠 전에도 집들이에 다녀왔다는 지인이 부럽다는 말을 하며 냉장고를 바꾸고 싶다는 등의 말을 꺼냈지만, 마음의 동요는 별로 없었다. 우리 집 소득 수준이 머리에 각인되고 내 마음도 그에 맞게 적응한 것 같다. 단정하게 자기 스타일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다니듯, 집도 내 스타일에 맞게 편히 살면 된다. 지금처럼. 모델하우스보단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집을 좋아한다. 다만 누가 온다고 급히 긴장하며 정리정돈을 할게 아니라 눈에 보일 때마다 소소하게 정리하고 살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하며, 딸아이의 친구를 맞았다. 덕분에 기분 좋게 정리된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정리정돈이 습관이 되면 삶이 더 효율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