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너지는 충분한가요?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20
아침에 눈을 뜨면 가족의 얼굴을 살피듯 하늘을 쳐다본다.
어느덧 하루를 시작하는 습관처럼,
"오늘은 어떤가요?"라고 묻는다.
매일 엄마에게 별일 없이 밤새 잘 잤냐고 통화하듯, 이 또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하늘을 보면 그 느낌이 내 속으로 찬찬히 스며든다. 구름의 모양과 양에 따라, 하늘이 만드는 색깔에 따라 나도 모르게 젖어든다. 하루를 잘 보낼 충만한 에너지를 덤으로 얹어 주기도 하고, 힘들면 쉬라고 저 높은 곳에서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다.
토요일 오전, 학원 가는 딸아이를 따라 집밖으로 나오면 잠시 탄천길을 걷는다. 며칠 사이에 가을이 성큼 다가와 공기는 서늘하지만 상쾌하고, 햇살은 눈부시나 따뜻하다. 아직 자고 있는 남편과 아들은 모를 이 맛을 느끼며 걷는다. 이 시간에 가끔 들리는 카페에 간다. 스타벅스와 마주하고 있다. 활짝 문을 열어젖힌 작은 카페에는 나 같은 엄마로 보이는 사람들이 혼자 앉아 있다. 쓰거나 보고 있다. 중간중간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아빠들은 커피를 포장해서 간다. 조용하게 주말 아침을 맞는 사람들. 나도 그들처럼 혼자만의 충전시간을 갖는다.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었다. 남편이 자주 말하는 "에너지 총량의 법칙"에 관한 내용이었다.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정해져 있으니 균형 잡힌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프고 나서 가용 에너지는 줄어들었다. 물론, 세월이 흘러 신체 노화도 따랐으니 당연히 에너지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피로도는 줄었다. 에너지가 줄었지만, 신기하게도 피로도 또한 같이 줄었다. 밀도 있게 하루를 살아가는 법을 깨닫고 실천한 덕분이다. "나"를 원의 주변부에서 중심 쪽으로 이동시킨 결과이다.
가족과 주변사람의 일을 우선적으로 끝내며 살았다. 남은 시간에 내 할 일을 하려니 에너지는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그들의 요구에 맞추느라 에너지를 다 끌어 쓰고 나면 뿌듯한 마음이 찾아오긴 했지만 남는 건 파김치가 된 나였다. 열심히 했지만 별 대수롭지 않게 평가받을 때는 속상하고 힘들었다. 할 일은 다 못했는데, 몸은 처지고 시간은 별로 없어 계획한 일을 시원하게 끝내지 못했다. 나에게 미안했다. 나를 돌보지 않는 삶을 계속 살았다. 성공이든, 성장이든, 눈에 보이는 결과 없이 애만 쓰고 어정쩡하게 산 꼴이 됐다. 매일 피곤했다. 그러다가 암이 찾아왔다. 내 생활을 알던 지인들은 말했다. 갈 때까지 간 스트레스와 피로가 암을 몰고 왔다고.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스트레스와 피로에 찌든 일상은 칼로 자르듯 갑자기 끝이 났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 우유부단한 나라는 사람을 나보다 더 잘 알았던 것일까. 일의 순위를 매기고, 무엇보다 내 건강을 최우선으로 놓게 되었다. 부자가 아니지만, 부자도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피곤하다 싶으면 누워서 쉬는 남편과 달리 나는 쉬는 것을 몰랐다. 할 일을 마치고 잘 때까지. 그런 면에서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고 지금도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남편은 평생 병과 살아온 부모를 보고 자라서 그런지 감기라도 걸리면 바로 누워서 그냥 쉰다. 중병에 걸려 자리보전을 하는 사람처럼, 허덕이며 집안일을 하다 보면 가끔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시부모님 또한 평생 건강관리에 신경 쓰신 분들이라 여태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와 달리, 친정은 나보다 우리를 중시하는 집안이었다. 특히 엄마는 본인의 건강보다는 가족을 보살피고 조상을 모시는데 전념한 삶을 사셨다. 평생 고혈압 약을 복용했음에도 관리를 소홀히 했기에 이전의 수고는 온데간데없고, 환갑 이후의 안락한 노후대신 병원신세를 지면서 힘들게 사신다. 제대로 본인의 인생을 못 살아본 것 같아, 불쌍하고 애달픈 마음에 이끌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엄마 병원에 매일 들렀다. 자연스레 울산에 살면서 마음은 있지만 못 가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용인으로 돌아와서는 코로나로 인해 매일 병원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1주일에 한번 방문한다. 이래도 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이제는 매일 가지 않는다. 건강을 우선 챙기라는 엄마의 무게 실린 말을 새겨들으며 일주일을 살아간다.
사회활동 없이 살다 보니 은퇴자의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보면 재미없고,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인 것 같지만, 나를 중심으로 살다 보니 외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확연히 줄었다. 대신 일상의 만족도는 커졌다. 한때는 전업주부가 되었다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더 이상 불행하다고, 우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매일 하루에 두 번씩 탄천을 걷는다. 주 3회 근력운동을 한다. 감기에 자주 걸리지 않을 만큼, 면역력이 생겼고 누우면 바로 잠들어 불면의 밤은 사라졌다. 신체적인 변화와 함께 정신적인 변화도 겪었다. 아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굳이 애써 만들지 않는다.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강박은 사라졌고, 1주일에 한두 번 지인과 커피 타임을 갖거나 그마저도 없어도 상관없다.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고 들어줄 정도면 충분하다. 비교와 자랑뿐인 만남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쓰는 에너지보다 채워진 에너지가 많아졌다.
에너지는 쓰기만 할 수 없다. 충전을 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이용해 자기를 바라볼 때 채울 수 있다.
채우고 굳이 낭비하지 않을 때 매일 보는 가족에게도 애정이 담긴 말로 행복한 기운을 전달할 수 있다. 내 하루가 빵빵할 때 가족에게도 친절하고 상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