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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Oct 02. 2024

1년에 한 번 먹는 삼겹살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19

삼겹살, 목살, 살치살, 등심 등등. 종류와 부위를 가리지 않고 일주일에 2-3번 밥상에 올린다. 평소처럼 프라이팬 위에 누워 있는 고기를 뒤집다가 추석 때 먹었던 삼겹살과 돼지갈비가 생각났다. 남동생의 고기를 맛본 뒤, 자주 생각난다. 먹음직스럽게 육즙이 가득한 게, 보기에도 좋고, 맛도 좋았다. 


삼촌집에 언제 가요? 빨리 가고 싶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친척들도 보고 고기도 먹고, 얼마나 좋은데. 기대돼요.

좋긴 하지. 우리 펜션 같잖아.

자주 가면 그 맛이 안 날 텐데.


작년 추석에 처음으로 남동생이 직접 숯불에서 구워주는 고기맛을 봤다. 우리 집 아이 둘, 여동생네 아이 둘은 삼촌네 가서 먹고 놀고 자고 싶어 일 년을 손꼽아 기다린다. 작년 여름부터 남동생은 아파트가 아닌 전원주택형 단지에 산다.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눈앞에 북한산 자락이 웅장하고 시원하게 보여 경관 좋은 펜션이 따로 없다. 1층에 중정, 2층으로 올라가는 긴 계단, 옥상테라스까지. 빈틈없이 들어선 아파트섬을 벗어나 하루이틀 쉬고 오기에는 자연친화적, 느린 일상을 보내기에 최적의 장소로 보인다. 특히 중정에서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 되었다. 동생도 가족 모임을 위해 특별히 중정 있는 집을 선택했다고 하니 엄마를 중심으로 삼 남매가 한자리에 모이기에 안성맞춤이다. 덕분에 추석이면 펜션에서 휴가를 보내는 듯한 착각이 든다.


숯불에 굽는 두툼한 삼겹살은 시각적 미각적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통유리를 통해 삼촌의 모습을 시시각각 10개가 넘는 눈이 관찰카메라가 되어 지켜보았다. 포크를 들고 아이들은 준비한다. 신호를 기다리고 출발준비를 하듯 먼저 찍을 준비태세를 갖췄다. 동생들은 수다스럽게 장난치고, 그나마 중학생인 큰 애들은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숯불을 넣고 30-40여분이 지나자 노릇노릇하게 번지르르하게 구워진 고기가 접시에 담겨 식탁으로 옮겨졌다. 고기에서 기름기가 빠지듯, 삼촌의 이마에도 땀이 흐르고 아이들은 시합하듯 입에 넣으면서 쉬지 않고 이구동성으로 감탄사를 쏟아냈다.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삼겹살은 처음이에요! 삼촌 최고예요!"


아이들의 칭찬세례에 어른들도 한입 먹어봤다. 비게 많은 삼겹살을 싫어하는 내 입에도 침이 고였다. 달달하니 식당에서 잘 구워준 갈색 삼겹살처럼 진짜 제대로 구운 숯불삼겹살맛이었다.



1일 고깃집 사장이 되어, 가족들을 위해 고기 굽는 동생의 모습을 창을 통해 바라봤다. 고기멍을 때리는 듯, 열기에 벌게진 얼굴을 한 채 고기를 굽는 모습에 먹으면서도 미안했다. 어느 정도 아이들의 배가 채워진 후, 순번을 정해 김치에 싼 고기를 삼촌 입에 넣어주고 오라는 미션을 주면서 나눠먹었다. 아이들과 장난치며 받아먹는 동생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한쪽에서 휠체어에 앉아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을 감히 상상해 봤다. 엄마에게 남동생은 참 귀한 아들이다. 딸만 둘을 낳고 아들을 못 낳는다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게 낳고 키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들이다. 아빠처럼 남동생도 외아들이라 누구보다 맘 졸이며 아플까 넘어질까 걱정하며 키웠다. 7살까지도 업고 다닐 정도였다. 그런 아들이 누나네 식구들을 먹이느라 혼자 애쓰는 모습에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싶었다. 미안한 마음과는 별도로, 모처럼 누나들을 위해 맛있게 구운 고기를 음미하느라 우리 모두의 입은 행복했다. 


삼겹살 행진이 끝나고 돼지갈비가 등장했다. 삼겹살에 배를 채운 아이들은 돼지갈비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어른들의 몫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딸아이가 준비해 온 마시멜로까지 디저트로 구워주느라 동생이 애를 썼다. 집에서는 인덕션사용으로 제대로 마시멜로의 풍미를 느끼지 못했던 딸은 삼촌이 멋스럽게 구워주는 맛에 취해 흥분했다. 조카들도, 동생부부도 같이 한 입씩 맛을 보며 신기한 경험을 추가했다. 


펜션처럼, 잠깐 쉬었다 가기에 더없이 좋았다. 고깃집 사장의 과한 대접과 상냥한 안주인 덕분에 캠핑경험이 없는 우리 집 아이들은 나보다 더 즐거워했다. 축제 같은 명절을 만들어주는 동생네 부부에게 매번 고맙다. 추석날만 먹을 수 있는 정이 발린 삼겹살이 자꾸 생각난다. 내년에 만나자, 숯불구이 삼겹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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