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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Oct 08. 2024

서랍 속 수세미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23

"언니, 이거 가져다 설거지할 때 쓰세요."

"예쁘다! 이거 다 만들었어?"

"네, 천연삼베실로 만든 거예요."

"너무 고급스러워서 차받침으로 써도 되겠는데! 작품이야, 작품! 고마워!"

"지난번 마트에서 어머니가 수세미 사시는 거 보고 만들어봤어요. 어떤 색깔이 좋으세요?"


엄마는 아크릴실로 만든 세 가지 디자인 중에서 보라색 수세미를 가방에 담으셨다.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보관했다가 엄마가 필요할 때 가져다 드리기로 했다. 엄마 걸 챙겨준 것도 고마운데, 내 몫까지 손수 만들었다니 올케의 정성과 노고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손이 야무지긴 한가 봐. 



아크릴실로 만든 수세미
삼베실로 만든 수세미


한 땀 한 땀 코바늘 뜨기에 집중하며 긴 시간을 보냈겠지. 재택근무로 파트타임 알바를 하고, 독서지도, 코바늘 뜨기, 카페 알바, 텃밭 가꾸기 등 여러 활동을 한다고 했다. 40보통 여성과 달리 원치 않은 딩크족으로 살다 보니 이것저것 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그걸 보면, 자녀 양육에 투입되는 시간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감히 비교해 보게 된다. 취미생활을 하는 동안이라도 아이 생각이, 우울한 마음이 들어오지 못하게 굳건하게 벽을 쌓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두 번의 추석을 남동생집에서 보냈건만 마음을 다잡고 사는 흔적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듣다 보니 자꾸만 눈에 밟힌다. TV를 보다 독거노인이 나오니 본인의 미래 모습인 거 같아 속상했다는 얘기,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둘러싸여 명절을 보내시는데 본인은 찾아오는 이가 없을 거라는 얘기도, 글썽거리는 눈을 마주하며 듣는 내내 힘들었다. 본인의 엄마에게조차 할 수 없는 속내를 큰언니라고 나한테 용기 내서 한 번씩 꺼내놓는 것 같다. 


누가 만든 지 상관없이 가격표를 단 수세미를 사서 쓰는 게 마음이 편하겠다. 수세미를 지인에게서 받은 게 처음은 아닌데 내 식구가, 사연을 품고 만든 걸 받으니 속이 아린다. 주는 사람의 마음이 전해지는 소소한 선물에 울컥해 여태 쓰지 못하고 서랍장에 넣어두었다. 보고만 있다. 세제를 묻혀 그릇을 닦다 보면 닳아서 올케의 정성이 거품과 함께 사라질 것 같아서. 


워낙 손재주라고는 없어 학창 시절 가사 시간에 바느질도 삐뚤삐뚤하게 박았던 나인데, 코바늘 뜨기를 한다는 건 상상밖의 일이다. 더구나 눈이 침침하고 허리도 아파 오래 집중해서 앉아 있을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 앞으로도 할 수 없는 취미생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 나와 달리, 올케는 엄마와 시누이를 위해 본인의 시간과 정성을 담아 수공예작품을 만들어냈다. 고맙다는 말을 대신할 만한 말을 찾을 수 없어 어휘력 부족을 자책했다. 입으로는 칭찬과 감사를, 마음으로는 안타까움으로 받아 든 수세미를 당분간 서랍 속에서 조용히 쉬게 할 것 같다. 그냥 쓰면 되는데, 그냥 쓸 수 없는 나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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