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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Oct 11. 2024

버스 안에서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24

오랜만에 광역버스를 타러 갔다. 앞에 선 여성 두 명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과 60대로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캐리어를 옆에 두고 서 있었다. 둘의 대화가 어색했다. 한쪽만 묻고 있었다. 버스카드가 있냐는 질문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버스가 정차하자, 40대 여성이 직접 현금을 지불하며 종로 1가에서 내려달라고 기사님에게 똑똑히 말했다. 그렇게 60대 여성은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았다. 기사님은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좌석벨트를 채워주기까지 했다. 버스에 앉자마자 그 여성은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베트남분인 거 같았다. 통화 중인 상대방을 기사님에게까지 바꿔주면서 내려야 할 정류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그렇게 버스는 서울을 향해 달렸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라서인지 정류장마다 줄을 길게 선 승객들이 올라탔고, 어느 순간 버스 문이 닫혔다. 좌석 40개가 정류장 세 곳을 거치자 금세 차버렸다. LED로 잔여좌석이 표시되니 그 숫자를 보고 보통은 버스에 오른다. 2014년 광역버스 입석금지가 시행되었으나 현장에서는 출퇴근길에 입석이 용인되다 2022년 11월부터 경기버스의 입석이 전면 중단되었던 것이다. 오래간만에 다시 입석금지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기사님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리 없어요?"

그 순간, 조용한 버스 안에서 기사님의 목소리만 허공에 떠다녔다.

'아까 현금!'

혼자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보기 드물게 점잖아 보이는 기사님이셨다. 승객이 버스에 오를 때마다 상냥하게 "안녕하세요!"로 맞으셨다. 안전을 위해 승객의 벨트까지 챙기고, 전화를 받아주기까지 했는데.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당혹스러웠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서 있는 분, 내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던 분, 에게 안내를 하고는 동료 기사님에게 재빨리 전화를 돌리셨다. 상황을 설명하고는 대처 방안을 찾으신 듯, 다음 차량 기사분에게 조곤조곤 부탁조로 전화를 하셨다.


다음 정류장에서 서 있던 여학생을 내려주셨다. 그리고 잊지 않고 또 한 번 외치셨다.

"앞차에서 카드 찍은 사람이라고 해요. 타고 내릴 때 안 찍어도 돼요."

그렇게 버스는 서울을 향해 계속 달렸다. 기사님은 혼잣말인듯한 말을 한동안 멈추지 못했다.

'아까, 그 현금이 문제였네. 아이고. 어휴.'

듣고 싶지 않았지만, 적막이 흐르는 버스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눈은 감고 있었어도 귀가 열려 있었다. 보통 기사님들에게서 느껴지는 메마르고 차가운 언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시길래, 저리 점잖게 자책을 하고 계실까 싶었다. 유일하게 현금을 낸, 유일한 외국인을 신경 쓰느라 단말기 한번 안 눌러 다른 승객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해 무척이나 미안해하셨다.


잊지 않고, 종로 1가에서 베트남 여성분을 챙겨 내려주셨다. 하차 승객들도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를 한 마디씩 하면서 내렸다. 나도 잊지 않고 인사를 했다. 아침 실수에 대해 하루종일 되새김질을 하지 않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을 마치고, 소주 한잔 하실 것 같은 모습이기도 했다. 한쪽에 신경 쓰다가 원치 않은 피해자가 생길 때 만나는 당황함과 미안함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음 직하다. 그랬기에, 그 기사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승객에게 소리치는 기사님들과 다른 기사님의 태도에 그냥 지나 못하고 버스 안에서의 대수롭지 않은 일을 기억하게 되었다. 나를 보는듯해서남을 신경 쓰는 마음과 뜻하지 않은 결과에 자책하는 그 마음이 충돌하는 지점이 목격되어서. 별거 아닐 수도 있지라고 바로  털어버리지 못해 만지작거리는 모습 나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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