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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Oct 15. 2024

아버지와 호두과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26

천안에 다녀온 남편의 손에 호두과자가 들려있었다.


호두과자다!

나 좋아하는데!

천안의 명물이잖아.

그래요? 자주 먹어서 별생각 없었는데. 천안에서 유명하단 이야기는 들어본 거 같아요.


그렇게 한 마디씩 던지면서 식탁에 앉아 하나씩 까서 입에 넣었다. 식었지만 팥앙금과 백앙금으로 만든 달달한 맛 그대로의 호두과자였다. 저녁밥도 먹기 전에 디저트를 야금야금 먹어버렸다. 나에게 호두과자는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는 지역특산물이다. 어릴 적, 고속버스를 타고 전라도 친척집에 갈 때, 매번 휴게소에서 간식으로 옆에 끼고 먹었다. 이제는 코코호도, 아띠몽, 월넛투, 복호두, 호두당 등 다양한 체인점이 곳곳에 생겨 지역특산물로써의 명성보다는 간식으로 익숙한 지 오래다. 그래도 엄마인 내가 아닌 아빠가 어쩌다 사들고 오는 것은 맛이 다르다. 이런 게 색다른 맛이겠지.


"아빠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가끔 사 오셨어. 그때는 참, 귀했는데."

"할아버지가 겨울이면 귤 두 개를 주머니에 넣어오셔서 아빠한테만 살짝 주셨지."

  지나고 보니, 그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그랬어. 후회돼."

"왜 귤 두 개예요? 아, 결국,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네요."


호두과자를 입에 물고 남편은 갑자기 옛 추억 속으로 빠져든 거 같았다. 혼자만 알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아버지가 돼서 느끼는 그 사랑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아이들이 커 갈수록 예전보다 자주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다. 정작 시댁에 가서는 아버지께 생각만큼 살갑게 대하지 못하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이 들면서 자주 목격한다.


"돈이 없으니 아빠 줄 것만 딱 사신거지. 이해가 안 되지?


"없는 살림에 아들만 챙기셨던 거 같은데. 아버지께 자주 안부 전화 드리고, 집에 가면 곁에 앉아 말벗도 되드려. 아버지잖아. 계실 때 잘해드려야지."


괜한 잔소리를 추가한다. 그러나, 그게 마음만큼 잘 안되나 보다. 시아버지는 중앙부처 공무원으로 퇴직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적은 월급을 받는 외벌이 가장으로 몸까지 아파가면서 고생하셨다고 들었다. 어려운 살림에도 허약한 아들에게만큼은 시누이 몰래 먹을 것을 각별히 챙기셨다. 말없이 일만 하시던 분이 퇴직 후 갑자기 잔소리가 많은 아버지로 변하신 게 놀랍다고 했다. 본인이 원하는 일방통행 같은 이야기만 하시니 듣기 힘들다고. 사실, 가족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산지 오래된 것 같다. 나도 15년 가까이 되었으니까. 한쪽 정당 욕을 하시는 정치 이야기, 병원에서 홀대받은 이야기, 고생 끝에 공무원으로 퇴직한 이야기... 끝나지 않는 도돌이표가 무한대로 그려진 악보 같은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더 이상 반기는 사람은 없다. 결혼 후 한동안 나를 붙잡고 말씀하셨다. 1시간이 흘러도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집중해 들었다. 인생극장이 따로 없다 싶을 정도로 시청자의 감동과 연민이 교차했다. 그러나 슬며시 나도 지쳐갔다. 대화의 시작지점은 달라도 결국 중간과 마무리는 동일했다. 작정하고 외우신 듯 토시하나 빠지지 않은, 같은 레퍼토리에 관심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옆에 앉아 있는 나를 지켜보는 시어머니의 신경도 점점 날카로워졌다.


작년부터는 몇 마디 하시고 혼자 방에 앉아 유튜브를 보신다. 그 모습이 쓸쓸하고 안타깝다. 해결책은 없는 걸까, 여러 번 남편에게 이야기해 봤지만 딱히 돌아오는 해법은 없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가 아닌 한쪽이 우위를 차지하며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반복되는 내용을 듣기 좋아할 사람은 없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색다른 콘텐츠와 재미를 추구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느라 아이들도 어른들도 진득하게 듣기만 하고 앉아 있기는 쉽지 않다. 연민을 느끼는 나 조차도 부담스러워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였다. 한 번은 이야기를 듣다가 용기 내서 말씀드렸다. 글을 써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허허. 웃음만 지으시더니 뭐 쓸만한 인생이냐고 본인의 인생을 폄하하셨다. 할 말이 그리 많은 인생인데, 쓰기는 주저하시니... 쓰기보다는 누구라도 옆에 앉아 듣기를 바라시는 것으로 보였다. 자식으로서 그냥 들어주기도 싶지 않아 죄송스러웠다.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지만, 남편이 아버지 옆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누구보다 아들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틈만 나면 옆구리를 찔러 남편을 아버지 옆으로 보내는 중이다. 50세가 넘은 아들을 여전히 걱정하는 아버지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의 모습이 점점 자연스럽다. 나이 들어가는 아들이 나이 든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을 거라고 감히 말하면서. 나아가 아버지를 챙기는 모습을 자주 비출 때 우리 아들도 나중에 남편을 덜 외롭게 만들 것이라고 미래를 끌어오면서. 여기에 하나 더 덧붙여, 자식으로서 들어주기는 기본으로 하고, 먼저 가벼운 이야깃거리로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양질의 대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음식이든지 마음을 담은 음식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의 기억 속 호두과자도, 귤 두 개도 그 자리에 변함없이 남아 있을 것 같다. 남편의 기억과 만나는 순간 빛날 테지만, 아쉽게도 입 밖에 내서 같이 그때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표현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아버지의 소리 없는 사랑을 무심코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고 싶다. 우리 아들의 기억 속 아버지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음식으로 기억될지, 공부로 기억될지, 그냥 특색 없이 아빠로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한 가지만 기억해 주면 좋겠다. 아들을 사랑해서 아빠는 이것저것 노력하며 열심히 살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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