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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Nov 11. 2024

쌀포대는 사랑이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42

쌀부자가 됐다.

하루아침에 세 포대나 주방 한편에 누워있다.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아... 많다."가 절로 나왔다. 세 포대는 처음이다. 혼자 옮기기도 버거운데 소분하는 것도 한참 걸릴 듯싶다. 그런데, 든든하다. 과장 한 스푼 보태자면,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쌀 택배 갈 거야. 6개월은 먹겠지?"


며칠 전 시어머니는 농사짓는 친척분에게서 쌀을 사 보내셨다.

쌀 가마니를 두 눈으로 본 적은 없다. 한 가마니가 80킬로. 20킬로에 5만원으로 대략 잡아 전화상으로 계산까지 해주셨다. 세 포대니 15만원어치다. 마트나 쿠팡에서 품종, 등급과 할인여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그 가격대 전후로 판매한다. 7-8만원대 쌀이 아니라면, 사서 먹는 것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택배비가 더 들고, 어머니가 친척분에게 수고비까지 포함해서 값을 지불하니 더 비쌀 수도 있다. 그래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을 아니까,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쌀값이라도 아껴 살림살이에 보탬을 주고 싶은 속을 알기에 그저 감사히 먹는 일만 남는다. 


쌀을 보내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결혼 후 매년 1-2포대씩은 우리 집과 시누이집으로 보내셨다. 그때는 아이들이 어려 20킬로 한 포대를 비우는데 대략 반년은 걸렸다. 워낙 안 먹다 보니 쌀이 항상 남았다. 그러던 아이들이 커가니 쌀이 생각보다 금세 떨어진다. 쌀통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김치냉장고에 소분해서 보관하는 10킬로짜리 쌀이 한 달이 지나면 사라지고 없다. 


"엄마, 향기 나는 쌀을 먹고 싶으니 이제 보내지 마요. 언니도 먹고 싶은 쌀 좀 먹게 놔둬요."


작년에 시누이는 이렇게 말해버렸다. 쌀을 선택해서 먹을 자유를 달라고. 하긴, 다양한 품종으로 인기를 끄는 쌀이 있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다. 품종에 따라 찰기가 다르기에 찰진 쌀과 구수한 쌀로 입맛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찰진 쌀에는 백진주, 가와지, 미호쌀이 있고, 구수한 쌀에는 추청쌀, 수향미가 있다는 설명을 참고해 기호에 따라 구입할 수 있다. 밥 소믈리에가 된 듯, 고슬고슬한 식감과 풍미 있는 쌀을 골라먹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1년이 지난 후 어머니는 하시던 대로 쌀을 보내셨다. 그냥 받아먹기만 하는 게 죄송해서 안 보내셔도 된다고 했지만 그게 안 되셨나 보다. 시누이한테도 보냈다고 하셨다. 작년 이야기를 살짝 꺼냈지만, 오히려 언짢아하셨다. 


뭐라도 주고 싶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게 부모의 사랑임을 또 느끼게 만드셨다. 의식하지 않으면 잊고 살아가는 게 자식인데도 끝이 없다. 친정 엄마를 봐도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본인이 받은 용돈 몇 푼 가운데 일부를 아이들 간식사주라고 내 손에 쥐어 줄 때면 속이 상할 정도니까. 배곯아 쌀이 귀하던 시절은 아니지만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라 장보기가 무서운 요즘, 어머니 덕분에 밥이라도 맘 놓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 쌀 쇼핑은 없다. 많아 보이지만,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으면 쌀포대의 존재감은 금세 사라지고 그저 매일 먹는 밥으로 탈바꿈해 우리 배를 채워주는 역할에 충실할 것이다. 먹다 보면 어느새 "그 많던 쌀이 다 어디 갔지?"라고 이야기하겠지. 그렇게 보이는 마음에서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일상을 든든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받았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인답게 밥을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마음을 보내셨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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