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의 완성은 모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0

by 태화강고래

오늘도 모자를 쓰고 집 밖을 나선다. 모자 없이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갈 만큼 모자는 나와 한 몸이 되었다. 항암치료가 내 인생에 등장하기 전까지 모자는 나와 상관없는 패션 액세서리였다. 모자가 안 어울리는 얼굴형이기에 얼굴이 작고 갸름한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으로 여겼다.

이 또한 달라졌다.

아프고 나서 모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없어도 그만인 액세서리가 아닌 필수품으로, 무관심에서 관심받는 물건으로 바뀌었다.

머리카락은 목숨과 바꾼 것 가운데 하나이다. 숱 많고 건강하던 머리카락은 암이 데려가버렸다. 항암 부작용으로 빠진 머리카락은 치료 종료 3개월 후부터 자라기 시작했다. 새로 나온 머리카락은 가늘고 힘이 없었다. 내 머리카락이 맞나 싶어 실망스러웠다. 민둥머리였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것도 감지덕지해야 될 거 같은데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서글펐다. 1-2년 시간이 지나가고 뒷머리, 옆머리는 점차 숱이 늘어나는데 정수리는 아직도 휑하다. 딱 정수리 탈모처럼.



여성의 탈모가 주로 정수리에서 생기는 것은 탈모의 주범인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이 여성의 경우 주로 정수리 부근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DHT 호르몬은 머리카락을 서서히 가늘고 짧아지게 만들어 결국 머리카락이 모근으로부터 이탈되도록 만든다.

이처럼 정수리탈모는 이마의 헤어라인을 기점으로 정수리 뒷부분의 머리카락이 점점 가늘어지고 숱이 줄어들면서 탈모가 발전한다. 주기적으로 변화가 심해 호르몬의 변화, 병세 그리고 외부적 요인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으며 점진적으로 머리가 빠지며 임신과 폐경기 때 더욱 가속화된다. 또한 젊은 층 여성의 경우 사회생활로 인한 스트레스,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장애, 피임, 인스턴트식품, 잦은 펌, 염색 등이 탈모를 부추기는 주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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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를 겪는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이 내 것인 양 느껴졌다. 나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되고 나니 이제는 안다. 어떤 옷을 입어도, '이 정도면 괜찮게 차려입었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패션의 완성은 풍성하고 건강한 머리카락이었던 것이다. 길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의 주인을 볼 때마다 부러웠다. 한참 부족한 머리카락을 자신 있게 내놓지 못해 가리는 사람이 되었다. 소심하게. 누가 볼 세라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탈모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모자부터 구입했다. 주변에서 탈모약 먹고, 바르라고, 더 나아가 두피 문신이니, 모발 이식도 고려해 보라고 조언하고 걱정해 주었다. "탈모해결사"로 광고하는 먹거리, 약, 건강보조식품, 샴푸 등 관련 산업에 관심이 쏠리는 게 당연해 보였다. "아직 항암 끝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기다려볼게"라고 하며 하루하루 지냈다. 작년에 드디어, 피부과 진료를 봤다. 항호르몬제를 복용 중이니 적극적인 탈모 치료는 할 수 없고, 두피에 바르는 약과 영양제를 추천해 주었다. 약한 두피에 어떤 화학적인 자극을 주고 싶지 않아서 일단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면서 지내보기로 했다. 정 안되면 몇 년 후 진짜 모발 이식을 큰맘 먹고 해 보던지 하려고. 말할 수 있는 탈모 고민은 있지만, 당장 인위적으로 화학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아 오늘도 모자를 쓰고 나간다.


항암 가발을 벗고 모자를 본격적으로 쓰게 되면서 2년 정도는 여기 가도 저기 가도 모자만 보고 다닐 정도로 모자에 관심을 가졌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옷처럼, 4계절에 맞게 모자를 코디해야 스타일이 완성될 거라는 이상한 망상도 했다. 없는 머리카락을 모자로 가리기 위해, 돈으로 살 수 있는 모자라도 나와 걸맞은, 나와 어울리는 것으로 나를 완성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쇼핑하는 날이면 으레 모자 코너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하나둘씩 샀다. 고민하고 산 모자도 완벽하게 잘 어울린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전업맘이 되고, 아프면서 멀리 나가지 않게 되자 청바지, 점퍼, 모자로 일상복을 꾸렸다. 가볍고, 편한 옷차림이 필요했다. 평상시 산책 나갈 때는 모자가 크게 거슬리지 않았지만, 외출하기 위해 아프기 전 입던 출근복 위주의 세미정장스타일 옷을 입은 날이면 거울 속의 모자가 불편했다.



모자가 왜 이렇게 안 어울릴까? 모자랑 어울리는 옷은 뭘까? 모자 없이 살고 싶다 등등.

그러다가, 2010년 방영한 영국시대극 "다운튼 애비" 속 귀족 여성들이 쓰는 모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의상에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예쁜 외모에 모자를 쓰니 잘 어울리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당시 내 눈에는 모자도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구나, 귀족은 모자까지 다 갖춰써야 스타일이 완성되는구나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했다. 모자는 캐주얼에만 어울린다는 꽉 막힌 생각을 살살 털어내는 순간이었다. 패션의 완성을 머리카락에서 모자로 생각해 보자! 상황에 맞게, 내게 맞게 코디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달라진 게 보였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예전보다 자주 쓰고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운동할 때만, 등산할 때만 모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아무 때나 모자를 쓴다. 각자 모자를 쓰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표면상으로 모자를 사랑하는 인구가 많아진 거 같아서 내심 좋다. 이런 분위기가 내 맘을 편안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모자를 쓰지만 튀고 싶지는 않다.


자기 살기도 바쁜데, 누가 나를 그렇게 관심 있게 보겠어?

라고 스스로 되뇌면서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살짝 걸쳐 쓰며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쓰고 다닌다. 매일 똑같은 모자를 쓰던, 바꿔 쓰던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진 속의 나는 항상 모자를 쓰고 있다. 그러면, 어때! 건강한 머리카락이 떠난 자리에 모자 쓴 건강이 왔으면 됐지. 잃으면 얻는 것도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물건을 통해 세상을 보는 내 관심과 태도가 확장되었으니 이만하면 잘 배우며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괜찮다고. 이제는 모자도 제법 어울린다고. 이렇게까지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머리카락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조금 더 머리카락이 자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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