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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오면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76

by 태화강고래

새해가 시작된 지 2주가 훌쩍 넘어고 그 시간만큼 어느새 주말부부로 잘 살고 있다.


2년 전, 처음 주말부부로 살 때보단 빨리 적응했다. 불행이든 행복이든 적응의 동물인 인간, 더구나 한번 해 봤다고 어렵지 않았다. 주중은 역시 편했다. 6시 기상도 없고 아침저녁 반찬 걱정도 없고 빨래도 없다. 만세를 부를 정도는 아니다. 몸은 편하나 마음은 아직 적응 중이다.


아이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아빠를 찾는 유치원생도 아니거니와 살갑게 놀아주는 아빠가 아니었기에 사춘기에 접어든 10대들에게 주말에 보는 아빠라 해도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남편도 그랬다고. 자신도 아버지가 주말에 오셔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아들이었다고 했다. 공무원 신분으로 홀로 지방근무를 하셨던 아버지가 느낀 수고로움과 외로움을 당시 자신도 모를 정도로 철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고. 시간이 흘러 아이들도 아빠가 되어 비슷한 경험을 할 때 비로소 연민과 후회가 찾아오는 게 인생인가 싶다. 후회가 없도록 미리 앞당겨 잘하면 좋으련만, 기대하지 않는 게 속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엄마라도 되는 냥, 안쓰럽다. 부부가 떨어져 사니 애틋함이 생겼다는 고백 같은 말에 본인은 무신경하게 반응한다. 오버하는 건지 모르지만 어쩐지 신경 쓰인다. 가족이니까 가장이니까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겠지. 내 성격이 그렇다.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넘기다가도 엄마라서 그런지 시어머니처럼 된다. 50이 넘은 아들인데도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고 하시던 그 말씀이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남편을 위해 써야 할 관심과 노동력의 일주일치 총량은 일정하게 변함없으니 평일에 안 쓴 에너지를 주말에 몰아 쓰는 상황이 되었다.


아내보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밥을 하고 과일을 깎는다. 잡곡밥과 단백질 위주의 밥상을 꾸리고 과일을 두배로 챙긴다. 당뇨인데, 최소한의 과일을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안 통한다. 주중에 못 먹으니 주말에라도 마음껏 먹는 즐거움을 준다. 만족스러운 미소가 얼굴에 살포시 느껴진다. 주말 외출이 사라져 집에만 머무르니 혼자 산책이라도 나간다. 일시적일지 지속적일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집에서 쉬고 싶다니 어쩔 수 없이 원하는 대로 지켜본다. 한주의 피로를 풀고 재충전이 가능한 편안한 집이 되라고 한마디 말이라도 다정하게 한다. 떨어져 살다 보니 안 그래도 안 싸우는 부부지만 싸울 일이 없다. 고생하는 남편이 오면 무조건 잘해주라는 친정엄마의 말을 흡수한 듯,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모나지 않게 애쓰는 중이다. 일요일 늦은 오후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고 집안 정리로 주말을 마무리한다. 한 달이 지나고 몇 달이 흐르면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아직은 모르겠다.


나에게 주말은, 쉬는 날이 아니라 가장 바쁜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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