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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대화는 괜찮은가?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77

by 태화강고래

방학중인데 집안이 고요하다. 아들과 딸, 둘 다 집에 있지만 각자 방에서 학원 숙제를 하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특히 사춘기 아들이 방에서 나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다. 먹을 때만 나오니 얼굴을 마주하거나 혹은 대화라도 해 볼 찬스를 잡기가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나도 남편도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으면 거의 대화 없이 도서관 같은 집에서 조용한 가족으로 하루가 금세 지나갈 정도에 이르렀다. 문제 있는 가정 같은 위기감마저 들었다.


대화 :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또는 그 이야기


'가족 간 대화 실태(2023, 인트루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대인의 65.3%가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1시간 미만이며,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은 하루 1시간 소통하는 사람이 겨우 10% 정도라고 했다. 다른 조사에서는 직장인들은 하루에 30분도 채 가족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는데, 설문조사 당시보다 대화시간이 더 줄면 줄었지 늘지는 않았을 것 같은 비관적이 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65436


가족 간, 특히 자녀와 편안한 대화를 자주 할수록 정서안정과 인성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권한다. 밥상머리 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가족이 모이는 저녁시간에 하루 일과를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는 그 말. 잘 안다. 어렸을 때부터 밥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자란 나는 여전히 그러길 원한다. 아이들이 초등 저학년 때까지는 가능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라는 요망한 괴물이 아이들 손에 척하니 붙어살게 되면서 힘들어졌다. 유감스럽게도 스마트폰에게 자리를 내 준 남편 탓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밥을 먹자고 이성과 감정을 모두 동원해 여러 번 말을 해봤지만 헛수고로 돌아갔다. 모범을 보여야 할 아빠가, 가정생활에서 평균이상은 한다고 자타 공인하는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밥을 먹으니 아이들에게 내 말이 먹히지 않는다. 마치 혼밥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식당에 온 듯, 혼자 밥 먹는 기분이 들 때면 이 상황이 암울하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가 말없이 밥을 먹게 된다. 다행히 마땅한 이야깃거리라도 생기면 그때서야 물꼬가 트인 듯 대화가 오고 간다. 식탁이 살아난다. 관심을 끌만한 대화 주제가 역시 중요하다.


스마트폰 사용도 문제지만 서로의 관심사에 맞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부모는 자연스레 아이의 학업과 건강에 신경 레이더가 맞춰져 있다. 공부가 공통의 관심사일 경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손발이 안 맞는다. 아직까지 중학생이라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렇다처도 하나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말을 꺼내고 싶은 아빠와 달리 아들은 언젠가부터 자리를 피하기 일쑤다. 어떤 주제로 시작해도 "공부"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가끔 뉴스거리를 주제로 진지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새삼스레 무척 뿌듯하다. 저만큼 성장했으니 아들도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싶은 거였다.


딸도 아빠의 공부 조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둘 사이에는 특별한 끈이 있다. 딸과 남편은 여자 아이돌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최근 아이브의 신곡 발표가 있자 딸은 아빠에게, 아빠는 딸에게 신곡을 들어봤는지, 곡에 대한 평가는 어떤지 등등 정보교환을 기반으로 한참 대화를 했다. 여전히 가요계에 관심을 보이는 50대 남편의 충실한 업데이트로 10대 딸과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운다.


부모와 자녀사이에 "공부"이야기를 빼도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텐데, 눈앞의 성적이 중요하니 공부가 항상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요새 남편은 아들에게 공부 관련 이야기를 자제하고 있다. 사춘기라 말수가 더 줄어든 아들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할 때까지 잠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편하게 부모와 마주하다 보면 본인의 고민과 걱정거리도 슬그머니 보여줄 거라 믿기로 했다. 부모가 하고 싶은 말과 자식이 하고 싶은 말이 일치하지 않는 불편한 대화는 되도록 하지 않기로. 한쪽의 일방적인 이야기로 흘러갈 경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화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성장과정에 맞춘 눈높이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부모의 말을 내세우기보다는 힘들어도 가끔 아이들 말에 귀 기울여 대화를 시작하면 우리 가족의 대화는 멈추지 않고 꾸준히 이어질 거라고 믿는다.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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