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78
"아파 죽겠어요! 내 인생 최고로 아파요!
엄마는 안 겪어봐서 모르잖아요!"
두 번째 치료를 마치고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발바닥에 생긴 게 티눈이라 믿었다. 딱 봐도 굳은살이 티눈처럼 보였다. 큰 병이 아닐 거라 생각해 2프로 부족할 정도의 성의를 담아 발바닥을 보여줄 때마다 대꾸했다.
"괜찮아. 티눈이니, 조만간 피부과에 가자."
그렇게 말만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몇 개월이 흘러 방학이 돼버렸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잔뜩 긴장한 딸아이를 데리고 2주 전에 피부과에 갔다. 마취를 하고 당연히 티눈을 제거할 거라 믿었다.
"이거 티눈 아니고, 발바닥 사마귀예요. 몇 개월 됐으면 많이 퍼져서 냉동 치료에 시간이 걸리겠어요."
"사마귀요? 냉동치료는 뭐예요?"
"바이러스 감염인데, 활동성이 높고 피부가 약한 아이들 발과 발바닥에 잘 생겨요. 동상 걸린 것처럼 차갑게 한 뒤에 계속 벗겨내야 해요."
그렇게 냉동치료를 시작했다. 스프레이를 발바닥 사마귀부위에 뿌리자 얼어버린 듯 하얗게 변했고, 의사가 누르고 뿌리고를 4-5번 반복했다. 그 사이 딸아이는 아프다고 끙끙댔다. 첫 번째 치료 후, 이틀 동안 아파서 발을 제대로 딛지도 못하겠다고 샤워도 제대로 못하겠다며 무척이나 신경을 썼다.
2주가 흘러 검은 점처럼 도드라진 사마귀 각질을 긁어냈다. 한 꺼풀 벗긴 살에 다시 냉동 스프레이를 뿌렸다. 지난번보다 살이 약해져서 그런지 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아. 아. 아파요."
"아프니까 이만하고 2주 후에 또 와요."
치료하던 의사도 아플 거라며 몇 번하더니 멈췄다. 눈물을 찔끔 흘리며 아파했다. 12년 살았는데, 인생 최고로 고통스럽다고 하니 어지간히 아프긴 한 것 같았다. 채혈을 무서워하지만 채혈 5번과 맞바꿀 정도로 심하게 아프다 했다. 차갑게 꽁꽁 얼었던 살에서 찬 기운이 빠지면서 콕콕콕 욱신욱신 거리는 느낌이 들 거란 예상만 할 뿐 난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50년 가까이 살면서 꽤 아파봤지만 사마귀 냉동치료의 고통은 미지의 영역이다. 그저 옆에서 위로하고 다독이는 엄마일 뿐이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을 위로할 때는 제대로 위로하는 법을 몰라 망설여진다. 누구도 모른다. 고통의 크기와 강도를. 대리체험이 불가한 고통이 통과하는 몸만 알기에 서럽고 억울한 경험이다. 두 번째 치료라 고통과 눈물의 시간은 길었지만 담담히 받아들이는 시간은 단축되었다. 피부과 방문 후 1시간 후부터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평정심을 되찾은 듯 보였다. 지켜보는 엄마로서도 다행이었다.
발바닥 사마귀라니. 액화질소에 노출시켜 하얗게 만든 후 해동하는 과정을 반복시켜 치료한다니. 유난히 초등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 몇 명이 처치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아이들과 살다 보니 미처 몰랐던 크고 작은 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찾아온다. 혼자 살았더라면 모르고 지나갔을 수많은 선택과 우연의 결과를 마주하게 되니 아무 일 없이 무심하게 지나가는 하루가 신기할 정도이다. 좋은 경험만으로 가득 채우고 싶은 건 욕심일 뿐. 자식을 키우는 일은 일상에 희로애락이라는 강한 양념을 뿌려 인생 경험의 폭을 깊고 넓게 해 주는 것 같다. 15년쯤 키워본 소감으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