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79
방학이라 역시 도서관은 북적거린다. 입구에서 가까운 1층 어린이자료실을 흘끗 둘러본다. 빈자리가 없다. 작은 손으로 책장을 넘기는 아이들과 옆에 앉은 엄마들로 가득하다. 여전히 부럽다. 한편에 세워둔 무인 대출기 앞은 대출과 반납하는 엄마사람들로 바쁘다. 2층에 마련된 어르신 전용실을 지나 익숙한 인문사회 종합자료실에 들어서면 쿵쿵대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재작년부터 탄천길을 따라 산책 후 이곳에 들르는 것이 어느덧 습관이 되었다. 특별히 대출할 책이 있어 오는 경우보다 마음이 시켜 오는 경우가 더 많다. 발길 닿는 곳에 도서관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마음이 답답할 때도 즐거울 때도 이 공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머릿속이 잠시라도 깨끗해지는 효과가 있다. 눈으로 제목을 훑어보다 끌리는 책을 집어들어 앉아 있기도 하고 대출해 집으로 오기도 한다.
학생 때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게 전부였다. 누구나 공부하는 시험기간과 자료조사를 위해 도서관을 주로 찾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도서관은 내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서점은 자주 다녔지만 도서관은 가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자 다시 도서관이 눈에 들어왔다. 책육아를 해보겠다고 주말이면 가끔 크고 작은 도서관 나들이를 갔다.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을 힘들어했고,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방해가 될까 눈치 보다 30분을 겨우 채우면 서둘러 도서관 밖으로 나와야 했다. 계속 노력했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포기가 빨리 찾아왔다. 초등 저학년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자 어느 순간부터 얼굴을 붉히며 도서관에 데리고 가지 않는 엄마로 살았다.
혼자 다니기 시작한 건 울산에서부터였다. 암환자로서 표준치료를 끝내자 시간부자가 되었다. 아이들을 챙겨 학교에 보내고 나면 태화강 산책 이외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주민센터 2층에 도서관이 오픈한다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가본 곳은 새로 지은 곳이라 모든 시설이 깔끔했고 집에서 15분 거리라 다닐 만했다. 오전시간 도서관을 찾는 사람은 많아야 5명일 정도로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낯선 울산에서 혼자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붙인 지 얼마 안 된 듯, 청구기호를 붙인 테이프가 빛나는 신착자료를 앞에 두고 누구보다 먼저 읽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때타지 않게 조심해서 책장을 넘겼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AI지식 등이 기억에 난다. 학창 시절에도 하지 않았던 도서관 출입이 어느덧 루틴으로 자리 잡아갔다. 집에 머무르지 않고 도서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일을 하고 돌아가는 듯한 뿌듯함은 덤으로 내 기분을 업시켰다. 결국 동네산책은 도서관 산책으로 이어졌다. 생각해 보니 아프고 시간부자가 되면서 독서와 산책이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혼자 도서관 가는 길이 행복하다. 몰입해 있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과 그 즐거움을 나도 느끼라고 자극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마법에 걸려든다. 책이 숨 쉬는 곳에서 나도 숨을 쉰다.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니 더없이 감사하다. 동네 도서관이 존재하는 한 나도 함께 그 속에서 존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