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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를 보니 엄마가 또 생각났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80

by 태화강고래

설이 다가오고 있다. 주말에 공휴일까지 덤으로 주어져 긴 연휴는 이미 시작되었다. 마트에 갔다가 세일하는 통통한 조기를 보고 서성거렸다. 한번 사볼까? 집어 들었다. 평소 식탁에 올리는 고등어, 갈치, 삼치가 아닌 조기를. 랩을 벗기니 특유의 비린내가 싸하게 올라 부엌에 펴졌다.


기억 속 엄마는 명절이 다가오면 한해도 거르지 않고 바삐 움직이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세월과 함께 몸에 밴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셨다. 차례상에 올릴 제수품을 구입해 정성을 다해 손질하며 시간을 보내셨다. 특히 옆 동네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싱싱한 생선 10여 마리를 신경 써서 베란다에 건조했다. 위치상 베란다 뒤에 있던 내 방은 생선냄새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방이었다. 향수도 아닌 비릿한 냄새에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며칠만 참으면 좋아하는 생선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견딜만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가득 차려놓은 음식은 우리 삼 남매와 엄마 차지였다. 동태 전, 동그랑땡, 육전, 꼬치전은 전날 엄마를 도와 여동생과 내가 부쳤고, 생선 굽기와 나물무침 등 대부분은 엄마가 알아서 쓱쓱 준비하셨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푸짐한 명절 한 상이었다. 할머니가 계실 땐 가끔 친척분들이 들렀지만 대부분 우리 넷이 조용히 명절을 보냈다. 큰 집도 작은 집도 없는 홀로 우리 집. 그마저도 아빠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듯 연휴가 시작되면 바로 고향에 내려가셨다. 엄마는 혼자 차례상을 차리고 아빠는 고향 산천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뵈러 가셨다. 기억하는 한 아빠와 함께 보낸 명절은 없었다. 먹을 사람도 없는 집에 음식장만은 왜 그리 많이 하셨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큰 손을 말릴 수 없었다. 내 눈에 비친 엄마는 항상 안쓰럽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그리도 열과 성을 다해 차례상을 차렸는지. 30년 넘게 묵묵히 차례상을 혼자 차린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지 가끔 물었지만 되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해야 하는 일이라 하지.

너희들이 무탈하게 살라고. 내 자식들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조상님들한테 부탁하는 거지.


조상님들에게,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한 마음이 전부였겠지만 간소하게 하면 안 되었을까. 주어진 환경을 벗어날 수는 없어도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은 써도 됐을 텐데. 당연한 건 없는데 며느리, 아내, 엄마로서 산 엄마의 인생. 결국, 나보다는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었다. 2011년 설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쓰러지셨다. 다른 때는 아니더라도 그 해만큼은 몸이 안 좋았으니 간소하게 지냈어야 하는데, 이제는 한스럽다고, 그땐 왜 몰랐었는지. 바보같이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했는지 후회하신다. 지금이야 스스로 돌보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모르셨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엄마는 과연 일을 적당히 줄이고 몸을 돌볼 수 있을까? 미래를 알면 과거를 달리 살아 노후를 덜 고통스럽게 보내지 않았을까? 엄마와 달리 나는, 나를 돌보는 삶의 가치를 호되게 배웠기에 적당히 흘러가는 대로 하루를 살아간다.


매일 전화통화를 하는 엄마지만 조기를 보니 엄마가 또 생각났다.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은, 내 손으로 원하는 음식을 장만하고 자식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그 말이 나를 매번 슬프게 한다. 명절이 다가오니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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