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86
요새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스쳐 지나가는 말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영어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매번 사전에서 하나하나 뜻을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별거 아닌데,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이런 반응에도 엄마는 걱정이 된단다.
이유는 할 일이 없어서...
할 일. 해야 할 일.
그게 머라고 70이 훌쩍 넘은 엄마는, 병원살이하는 엄마는 할 일이 없으니 쓸데없이 걱정하는 일이 유일한 할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쓸쓸히 가냘픈 목소리로 대꾸한다. 주부라면 누구나 가끔 피하고 싶지만 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이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에서 벗어났지만, 날 수 없는 새가 된 듯하다. 자식과 남편 챙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산 인생, 그들을 둘러싼 모든 일이 한꺼번에 사라지자 자신만 덩그러니 남았다. 딱히 해야 할 일도 재미있는 일도 없어 긴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진다. 주부로서만 살다 병든 노인이 되어보니 존재감과 삶의 의미가 연기처럼 자취를 감춘 듯하다.
할머니가 된 엄마를 보면 할머니가 생각난다. 엄마도 나같이 할머니가 가끔 떠오를까? 할머니는 꽤 자주 말씀하셨다.
"할 일이 없으니 딸네 집에나 가야겠다. 여기는 심심하다. 일이 없으니."
그렇다고 가족들이 할머니를 위해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며 살갑게 애틋하게 굴지도 않았다. 각자 바쁘기도 했지만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가 아닌 고모네 할머니 같은 어쩐지 서먹서먹한 분이셨다.
자영업을 하던 고모네 부부를 대신해 청소하고 아이들을 챙기며 할머니는 본인의 쓸모에 기분이 좋으셨을 것 같다. 며느리 눈치도 안 보고 막걸리도 마음껏 드시면서 지내시지 않으셨을까. 당시에는 딸만 찾는 할머니가 야속했지만 세월이 흘러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일이 없어서라는 그 서글픈 말이 계속 들린다. 자식 걱정으로 가득 찬 엄마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묵묵히 대화 상대가 되어 듣고 보듬는 일뿐인 것 같다.
어느새 노인이 돼버린 엄마, 그리고 그 길을 뒷따라가는 나. 엄마의 노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분명하게 말한다. "노후자금 마련,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거기에 하나 더, 노년에 피할 수 없는 외로움과 소외감과 동행할 수 있는 나만의 취미든 일이든 찾아 살라고. 부모세대에 비해 우리가 경제적, 육체적 측면에서 노후 대비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게 인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