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92
겨울방학의 끝자락이 보인다. 코너만 돌면 목적지다. 1월 초에 시작된 방학.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은 학교로, 엄마는 엄마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돌밥 시계는 몇 달간 멈춘다. 오는 건 막을 수 없는 듯,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씨가 개학을 더욱 재촉하는 듯하다.
이번 겨울 방학은 예년과 달랐다. 야심 찬 계획도, 큰 기대도 없이 시작했다. 방학을 앞두고 가족회의를 하고 방학을 잘 보내자는 말이 전부였다. 타이거맘의 정체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대책 없는 성격 탓에 아이들을 공부하라고 들볶지 못했다. 자의 반 타의 반, 서로에게 자율성을 부여해 줄 만큼 성장했다. 그마저도 이제는 내려놨다는 게 정확한 말이겠다. 다행인 건, 때가 된 것 같은 순간들이 자주 찾아왔다. 중 2 아들, 6학년이 되는 딸은 자신만의 루틴에 따라 일상을 보냈다. 언성을 높이는 일, 짜증을 내는 일이 사라졌다. 여전히 딸은 엄마의 관심망이 필요하지만 반정도는 눈감아 줬다. 눈 떠서 잘 때까지, 하루하루 보내다 보면 어느새 주말이 다가왔다. 거실을 한가득 채웠던 레고도, 모형도 이제는 자취를 감추었다. 어쩐지 낯설게 휑해진 거실 대신 각자의 방을 채우고 있었다.
방학이 시작된 후, 2-3주 동안 아이들은 9시가 되어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몇 번 시도 끝에 그냥 두고 운동하러 나갔다. 일주일에 3번 하는 운동이지만 전체 23명인 수강생의 반 이상은 결석인 채로 2달을 보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수강생들은 방학 내내 얼굴을 비추지 못했고, 나처럼 그냥 자게 두고 운동하러 온 엄마들만 체육관을 채웠다. 덕분에 널찍한 공간에서 편하게 집중하며 운동할 수 있었다. 방학이라고 아이들만 바라보았더라면 운동 루틴이 깨지는 것은 기본에, 서로를 향해 화를 내뿜었을 법도 한데 운동 시간 50분은 겨울방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와 돌봄이라는 엄마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아들의 성장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때처럼 시간표를 만들어 붙여놓지 않았어도 알아서 해냈다. 방학 후 3주가 지나자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8시 기상으로 앞당겨 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쉬다가 영어와 수학 숙제를 했다. 식사 시간에 맞춰 거실로 나올 뿐 정해진 시간에 공부와 휴식을 섞어가며 하루를 보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학원수업을 가고 10시에 집으로 돌아오면 쉬다가 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너무 잘 가서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는 말에 부쩍 커버린 아들이 키만 큰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지루할 법도 한데 똑같은 일상을 군말 없이 살아내는 아들이 어른인 나보다 더 큰 어른 같기도 했다. 남과 비교하자면 끝이 없지만 1년 전, 아니 몇 달 전의 아들과 비교하자면 아들은 자라고 있었다. 본인이 살아갈 인생에 책임감을 조금씩 쌓아가며 진지해졌다.
딸아이도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싫어하던 수학문제풀이도 혼자 알아서 하고, 영어 단어 외우기도 곧잘 했다. 단어장 대신 어플을 통해 외우니 본인도 나도 편했다. 단어 시험지를 만들어 출력해 주곤 했는데 그런 자잘한 일도 사라졌다. 발음을 듣고, 읽고, 쓰면서 단어를 익혔다. 손 아프게 깜지를 만들며 단어를 외우던 그 시절이 까마득해 보였다. 독서습관이 잘 안 잡혀 함께 읽어야 하고, 중간중간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며 재촉해야 하는 초등학생이지만 미약하나마 성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공부하기 싫다고 외치는 빈도수와 짜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자기만의 취미생활로 휴식을 취하는 모습에서도 '컸구나!'를 감지할 수 있었다. 아이브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안무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방학이었지만 여행한 번 못 갔다. 설명절에 친척들과 만나 식사한 게 전부였지만 아이들은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집을 떠나기 싫어하는 사춘기 아들과 돈을 아껴야 한다는 딸의 연합작전으로 집 밖에서 하루도 자지 않았지만 집 안에서 무탈한 방학을 보냈다. 꽁꽁 겨울잠을 잔 우리 가족이 새 봄에는 폴짝폴짝 가볍게 뛰었으면 좋겠다. 수월했던 방학을 마무리하는 지금, 앞으로 더욱 성장할 아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응원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