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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91

by 태화강고래

주방에 서면 창너머로 보이는 각 가정마다 어떤 아침을 맞고 있는지, 별 탈 없이 보내는지, 보통의 하루를 시작하기를 바랐다. 다행히 우리 집 아침 풍경도 평화롭다. 물 흐르듯 흘러갔다.


쌀쌀한 기운이 여전히 볼을 차갑게 때리던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딱 마주쳤다. 그 가족을. 쩌면 마주치기를 내내 기다리던 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듯.


그날 그 순간 이후 며칠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각했다. 기도했다. 실락같은 희망을 품고.


지난주 아침, 평생 잊히지 못할 만큼 아팠던 날. 짧은 만남과 긴 여운을 남기고 떠난 그녀를 기억하며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출근하는 사람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딸아이의 학원 셔틀을 타기 위해. 피곤하다는 딸과 함께 멍하니 1층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00층에서 멈췄다.


"심정지 환자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주세요."


갑작스러운 구급대원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들것에 실려 레깅스를 입은 다리가 축 늘어져있었다. 얼굴까지는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바로 그 층이었다. 인사를 하고 지낸 지 두어 달이 채 안된 그 남편분의 회색빛 멍한 얼굴이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순간 눈에 가득 들어왔다.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심히 쿵쿵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겨 비상계단으로 갔다. 눈물이 왈칵. 다리는 후들후들. 빨리 내려갈 수 없었다.


살아야 되는데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그 말만을 반복했다. 한참을 걸어내려갔다.

먼저 급히 내려가 1층서 기다리던 딸아이도 겁에 질려 있었다.

딸아이를 꼭 껴안았다.


저 아줌마 암 걸린 그 아줌마예요?

응. 어떡하니? 얼마 전에도 방사선 치료받느라 귀찮다고 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이런 일이 생기지? 무슨 일이지? 살아야 하는데. 어떡하니. 어떡해.

엄마도 조심해요.

오래 살아야 돼요.


구급차 2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루종일 어떤 일도 집중할 수 없었다. 몇 번 인사를 나누었을 뿐인 그 주민은 그저 얼굴만 아는 이웃 이상이 돼버렸다.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몰랐으면. 그녀의 존재 알게 된 이후 그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출 때마다 매번 가슴이 철렁했다.


그렇게 어수선하게 며칠이 흘러 그 가족을 마주친 순간. 딸 둘과 아빠도 함께 멈춰 섰다.


그날 보셨죠?


남편분도 내가 본걸 기억하고 있었다.


잘 살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남편분에게 옆에 있던 큰딸이 손수건을 건넸다.


어떤 위로의 말도 선뜻할 수 없었다. 자초지종을 물을 수도 없었다. 목이 메었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망설이다 등을 한번 살짝 쓸어주기만 했다.


그렇게 셋은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잘 극복하며 살아가시라는 말만 속으로 했다.


우연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간 그녀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가족들 곁에서 하루하루 잘 사세요.


죽음을 기억하며 살라는 숱한 책 속 어느 구절보다 살 떨리게 나를 찾아온 특별한 경험.


2012년 갑작스러운 아빠의 죽음 이후 잊고 지낸 삶과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 새삼스레 곁에서 나를 깨웠다. 한편으로는 빨리 잊고 싶지만 어쩌면 그녀의 메시지는 잊지 못할 이야기로 남아 나와 가족을 사랑하며 살게 할 것 같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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