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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공부할 거야.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93

by 태화강고래 Mar 05. 2025

2025년 3월 달력을 마주한 지 며칠이 지났다. 나에게 3월은 경단녀가 되고, 바로 다음 해 암경험자가 된 특별한 달이다. 7년 차 경단녀이자 6년 차 암경험자의 희로애락으로 가득 채운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바깥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해도 될 만큼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암 발병 후 5년이라는 시간을 무사히 보내자 살짝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도 될 것 같은 그 느낌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지난 5년간 그랬다.

"건강만 신경 써야지"라고 하다가 살만하면 스멀스멀 찾아오는 그 생각 "나도 뭔가 하고 싶다. 그냥 이렇게 살기는 아쉽다."에 흔들려 계획을 세우고 지우고를 숱하게 했다. 답답해하는 나에게 주변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선뜻 나서지 못하고 흐지부지 흘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결심이 섰다. 때가 온 걸까? 30대는 육아와 일로 바빴고 40대는 병으로 쉴 만큼 쉬었으니 다가오는 50대는 새롭게 살 볼까? 그냥 주부 말고, 내 이름 석자를 다시 꺼내기로 했다.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누구나 알듯, 마음먹기까지가 힘든 거였다. 


남편에게 계획을 이야기하니 흔쾌히 승낙(?)했다. 다만 번역할 때처럼 무리해서 아플까 봐 걱정된다는 말을 덧붙였을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아이들 학원비도 빠듯한데 수업료까지 내야 하니 눈치 아닌 눈치가 보이지만 2년만 투자하는 셈치자고 웃었다. 나중에 다 갚겠노라고. 노후 대책으로 같이 버는 그날을 흐뭇하게 상상했다.


아이들에게 남편이 먼저 공개했다.

"엄마, 공부한대. 너희들처럼 학생이야."

"학생이라고요? 어디 다니는데요?"

"K대 사이버대학교."

"K대요? 과잠도 입어요?"


엄마를 응원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우스갯소리만 해 댔다. 대학시절, SKY 말고는 학교 밖에서 잘 안 입었던 그 과잠을 중학생도 알다니 놀라웠다. 


지난 설날, 시어머니께도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흘렸다.

"3월부터 공부한데요."

툭 던지는 말을 받아 애써 부연설명을 했다.

"잘했네. 애들이 크면 할 일도 없고 심심해. 하루종일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뭐라도 하는 게 시간이 잘 가지."


노후 대책으로 자격증을 따서 일하겠다는 며느리의 계획을 이야기했으나 여기서도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했다.


친정엄마에게도 계획을 말했다.

"엄마, 자격증 따서 일하려고."

"몸 생각해서 적당히 해. 하면 좋지. 그냥 살긴 아깝잖아."


엄마라고, 나를 키운 엄마라고 누구보다 내 마음 근처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는데 이 나이에 눈치 볼 것도 없을 법한데 여전히 신경이 쓰였다. 다행인 건, 20-30대만큼은 아니었다. 낯선 곳을 향한 10여 년 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렘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원 졸업 후 다시 학생 신분, 주부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되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그 말이 어느 때보다 나를 격려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이 시대, 평생교육의 시대에 나를 업그레이드시켜 나를 쓸 만큼 써보고 싶다. 내성적인 성격에 주춤했던 과거와 달리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세월과 경험 덕분에 예전만큼 떨지 않을 것 같다. 남편의 외벌이 생활도 조금이나마 단축시켜주고 싶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롭게 살고 싶다. 올해는 공부를 시작했다. 누구보다 나를 위한 공부이지만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조금이라도 자극제 역할을 하면 좋겠다. 성장하는 아이들과 함께 나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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