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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상추를 먹는구나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94

by 태화강고래

상추에 밥 한 숟가락,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 쌈장을 찍어 둘둘 말아 입에 넣는 그 손놀림이 어쩐지 낯설다. 초록잎을 직접 손으로 집어 들다니. 한편으로는 웃음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뭉클함이 나를 찾아왔다. 며칠 전부터 상추쌈을 먹겠다고 해서 동그랗게 눈을 뜨며 반신반의하며 상추를 샀다.


"이제 쌈도 싸 먹고. 갑자기 왜 상추에 싸 먹겠다는 맘을 먹었어?"

"고기만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해서요. 이제부터는 이렇게 먹으려고요. 맛있어요."

"갑자기 쑥 큰 거 같아. 어른 같아."


아들은 편식대장이다. 즐겨 먹는 음식이 매우 제한적이다. 반찬을 골고루 먹지 않아 한 그릇 음식을 만들어 주니 밥 주기 편하면서도 불편한 아쉬움이 매번 남았다. 특히 고기와 밥을 좋아한다. 단순하기 그지없이 먹고 산다. 고기에 김치라도 곁들여 먹으라고 아무리 권해도 고집스럽게 고기만 먹었다. 기름기 반질반질한 삼겹살을 밥 위에 얹어 먹는 모습만 봐도 내 목이 메고 속이 더부룩했다. 그런 아들이 달라졌다.


4인가족이지만 혼자만 좋아하는 쌈채소를 거의 사지 않았다. 냉장고 속에서 시들해지면 버리는 경우가 많아 한동안 안 샀는데 오래간만에 기쁜 마음으로 적상추와 청상추를 넉넉하게 장바구니에 담고 깨끗이 씻어 싱글벙글 즐겁게 먹었다. 고깃집에 온 듯, 우리들만의 식탁이 풍성했다. 삼겹살에 상추쌈은 찰떡궁합임을 알았다니 흐뭇한 저녁이었다.


식성에 따라 유치원생도 상추쌈에 된장국을 즐겨 먹을 수 있지만 아들은 중학생이 돼서야 슬슬 채소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작년 말부터 제육김밥에 잊지 않고 큼직한 오이 두 줄, 우엉을 넣어봤다. 싫어할 줄 알았는데, 오이가 시원하다는 평가를 내린 그날부터 제육김밥에 오이는 빠지지 않는 채소로 등극했다.


꼬꼬마도 아니고 나보다 덩치가 큰 아들인데 상추쌈 먹는다고 좋아하는 엄마라니, 이러다 몇 년 후 성인이 된 아들이 갖가지 채소를 먹게 되면 그때도 지금처럼 기분이 좋을까? 잘 먹는 자식을 마다할 부모는 없으니 계속 뿌듯하겠지. 성장하면서 경험이 쌓이듯, 먹거리 경험도 점차 확장시켜 다양한 맛을 알고 즐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넓고 먹거리는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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