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295
토요일 늦은 점심으로 셋은 마라탕을 먹었다. 잠시 그냥 집에 있을까도 생각했지만 따라나섰다. 남편과 아이들은 먹고, 나는 구경만 했다.
10여 개 테이블은 만석이었고, 아이들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슬쩍 둘러보니 앳된 초등학생들만 눈에 들어왔고, 성인이라고 할 만한 어른은 우리 부부를 포함해 4-5명 정도였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 인기가 여전한가 싶었다. 마라탕의 인기를 주도하는 소비자가 10-20대, 여성층이라는 기사가 생각났다. 얼얼하게 맵고 칼칼한 맛에 중독되어 자주 찾게 되는 대표적인 음식이 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자극적이라 난 좋아하지 않는다. 내 식성이 그렇다고 아이들까지 막을 수는 없어 어쩌다 가끔씩 사 주곤 한다. 탕후루는 안 먹어도 마라탕만은 찾는 걸 보면 신기하다. 0-4단계로 맵기를 조절하는데 매운 것을 그리 잘 먹는 편은 아니라 매번 1단계를 선택한다.
남편과 딸이 한 팀으로 신중하게 마라탕 재료를 양푼이에 담고 아들은 단독으로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담았다. 카운터에 가서 무게를 재고 주문을 넣은 후 아들은 말했다.
"엄마, 물가가 오르긴 했나 봐요! 제 마라탕은 25,000원이래요!"
"보통 17,000원 정도였는데, 그 사이에 가격이 올랐나 보네. 비싼데."
햄과 소시지, 어묵, 고기, 당면, 옥수수면, 라면으로 가득한 마라탕을 보고는 매번 그렇듯 놀랐다.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먹는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면과 가공육만 먹는 것치곤 참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딸의 마라탕에는 그나마 청경채와 버섯이 둥둥 떠 있었다. 여기에 분모자 (감자전분으로 만들어진 가래떡처럼 생긴 쫄깃한 당면) 노래를 부르던 딸의 요청에 따라 색다른 당면이 추가되었다. 입이 짧은 딸마저도 매콤한 국물맛이 매력적이라고 마라탕을 좋아한다. 중국역사에 관심 많은 아들은 쓰촨지방에서 온 음식이라 더 좋아라 한다. 화자오(쓰촨 후추)라는 향신료가 들어가 마비가 올 정도로 맵다고 해서 마랄 痲辣(저릴 마, 매울 랄)인데 중국식으로 읽어 마라탕이 되었다고 한다.
후루룩 후루룩, 대접 한 그릇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양의 면을 잘도 먹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자 연신 냅킨으로 닦아가면서 흡입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청경채 한 가닥이 장식품도 아니고, 국물맛에 꼭 필요하다는 말에 웃어넘길 뿐이었다. 대식가 아들에 비하면 딸아이는 천천히 소량을 음미하면서 먹는 듯했다. 매운지 물을 마시면서 자신의 속도로 배를 채워나갔다.
긴장과 설렘으로 새 학기 첫 주를 마치고, "마라 충전이 필요해요!"라는 말에 흔쾌히 먹고 싶던 마라탕을 사주었으니 눈으로는 놀라도 입으로 소리는 내지 않았다. 자주 먹는 건 아니니까 건강에 크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라면서. 기분 좋게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만큼 세상에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소소한 일상을 포착해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아직 복잡하게 다양한 감정을 꺼내지는 못한 채 상대적으로 가벼운 소재로 가볍게 쓴다. 권수호 작가는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에서 라이트라이팅(light writing)을 소개했는데, 소소한 행복을 포착하고 기록하고 싶어하는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일상 속 빛나는 순간을 바라보고 가볍게 글을 쓴다는 뜻이다...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의 의미를 찾아내는 연습이며 늘 가까이에 있는 삶의 행복을 실질로 받아들이는 마음 트레이닝이기도 하다. (p7)"
따로 또 같이 주말을 보내는 가족 곁에 있었다. 마라탕을 안 먹지만, 속으로는 아이들도 안 먹길 바라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럽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좋아하는 음식을 행복하게 먹는 그들의 추억 속에 나도 존재하고 싶었고 함께라서 흐뭇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