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96
지난주 영어학원 상담을 다녀왔다. 아들과 딸은 대형학원에 다니고 있다. 어느덧 아들은 3년째, 딸은 2년째다. 성취도 평가시험 후 전화상담이 가능하지만 새 학기라 인사라도 하려고 대면상담을 신청했다. 미로 같은 교실을 찾아가 상담 시간을 기다렸다. 각 반 앞에 붙여놓은 상담 리스트를 슬쩍 보니 신청자의 대부분은 초등학생 부모였다. 중학생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 어려웠다.
딸아이 반부터 들어갔다. 상냥한 선생님이 전반적인 수업태도에 대해 말씀하셨다.
"숙제를 정말 꼼꼼하게 잘 해와요. 안 해오는 아이들도 꽤 있는데, 잘하고 있어요."
우선 칭찬부터 들었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분위기 좋게 시작했다. 성적 결과지를 보면, 리스닝도 리딩도 윗 레벨 대비 턱없이 부족해 갈 길이 멀게만 보이는데, 선생님은 그 이야기는 쏙 빼고 했다. 망설이다 학원 숙제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는 하소연 같은 푸념을 흘리기도 했다.
"숙제만이라도 일단은 하는 게 중요하죠! 살살 달래가면서 추가 학습은 시켜보세요. 무리하지 마시고요."
숙제는 잊지 않고 꼼꼼히 한다. 그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 싶다가도 그게 전부라 엄마 성에 안 찬다. 조금만 하면 탄력이 붙을 텐데, 본인도 해야 한다는 건 알지만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계속 이어지니 답답할 때가 있다. 부족한 부분만 보지 말고, 잘하는 부분을 칭찬하라는 말을 되새기며 상담을 마쳤다.
아들반에 들어갔다. 역시나 아들에 대한 평가도 비슷했다.
"숙제를 꼼꼼하게 잘해 와요. 안 해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진짜 우직하게 잘하고 있어요."
생각해 보니 아이들 상담에서 매번 듣던 익숙한 말이었다.
"성실해요, 집중을 잘해요."
성실하다는 그 말.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품성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집부터 들었던 그 말이 홀연히 사라지지 않고 아이들에게 여전히 떡하니 붙어 있었다. 옛날처럼 집에 가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리 집은 성실을 가훈으로 써도 될 만큼 뼛속까지 성실하다. 시댁도, 친정도. 경연 대회를 연다면 상위권에 입상할 자신이 있을 정도이다.
여기에 더해 뜻밖의 소식도 전했다.
"레벨업이 돼요. 지금처럼 성실하게 공부하면 다음 레벨에서도 잘할 거예요. 성실함이 가장 중요한데 기본이 갖춰졌어요."
딸아이에 대한 칭찬 덕분에 은근 기분이 좋았는데 이어진 아들의 깜짝 레벨업 소식은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천천히 가도 된다며 레벨에 무심한 듯 아들을 믿고 기다리는데 막상 원하는 레벨을 받으니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엄마였다. 이번 시험이 어려워 레벨업 욕심을 내려놓았다는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전학 오고 나서 초등학교 1학년때 친구들과 비교해 자신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것을 부끄러워하던 아들은 친구들보다 한참 뒤에서 차곡차곡 올라갔다. 마침내 같은 레벨에 도달했다. 본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은 값진 결과였다. 부모의 잔소리가 끌고 갈 수 없는 강력한 내적 동기의 결과물이라 누구보다 떳떳하게 만족스러워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지만 아이들이 안에서보다 밖에서 더 튼실한 바가지로 생활하고 있다는 평가에 무척 고무되었다. 매달 꼬박꼬박 지출하는 학원비를 학원 전기세 내는데 무턱대고 일조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부모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 같아 뿌듯하고 고마웠다. 성실함이 모든 분야에서 성공으로 이끄는 매직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성실이라는 튼튼한 바닥공사가 얼추 마무리돼 가고 있는 듯해 부모로서 흐뭇하고 보람찼다. 우리 부모님이 보여주신 대로, 보고 자란 우리를, 아이들은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