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01
지난주부터 감기기운으로 골골 댔다. 일주일 넘게 활력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산책을 나가도, 운동을 하러 가도 오히려 힘이 빠져 돌아오니 안 가느니만 못했다. 처음 방문한 내과에서 진료를 봤다. 증상을 듣던 의사는 코로나검사부터 하라고 했다.
"코로나요? 아직도 코로나가 있나요?"
"다시 재유행하고 있어요. 근육통이 있으시니 한번 해 보세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며 검사실로 갔다. 애꿎은 분에게 나도 모르게 억울함과 답답함을 털어놨다.
"코로나에 두 번 걸렸어요. 가족 중에서 집에 있는 저만요. 또 걸리진 않았겠죠?"
"또 걸리기도 하죠. 잠시 불편하세요."
검사하는 분은 친절한 표정으로 코 속 깊숙이 찔렀다. 다행히 이전에 비해 불편감은 덜했지만 제발 아니기를 바라며 20분을 대기했다. 병원에서 금쪽같은 시간을 흘러 보내는 데는 이력이 났지만 여전히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생각하니 짜증도 났다.
"코로나는 아니네요. 약 드시고 다시 오세요."
이십여분이었지만 코로나에 걸렸을까 솟구쳤던 긴장감을 떨쳐내며 한숨 돌리고는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왔다. 점심시간이 돼서 배꼽시계도 울렸다. 뜨근한 팥죽이 생각났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줬던 때는 좋아하지 않았던 팥죽이 언제부턴가 생각나는 음식이 되었다. 엄마가 좋아하다 보니 나도 덩달아 좋아하게 되었을까. 가끔씩 먹고 싶을 때면 왕복 30분 거리에 있는 죽집으로 픽업을 갔다. 식구들이 죽을 찾을 때도 두 발로 다녀왔다. 배달앱은 깔려 있어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이다. 배달음식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습관이 들면 헤어 나올 길이 없기에 거의 안 쓴다. 먹고 싶은데 걸어가기에는 왠지 기운이 달렸다. 오래간만에 배달앱을 켜 확인하니 매장가격보다 천 원이 더 비쌌고 최소 배달금액이 정해져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 그냥 포기했다. 냉장고에서 반찬과 밥을 꺼내 대충 먹었다. 입맛이 없어서 그런지 그날따라 삼시세끼 집밥이 지겨웠다. 내가 한 밥이 아닌 누군가가 만든 음식을 먹고 싶었다. 생각보다 미련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날 저녁, 죽을 포기하지 못한 나는 배달앱을 켜서 결국 주문했다. 내가 먹고 싶은 팥죽과 딸아이가 먹을 전복죽을 주문했다. 픽업에 드는 시간과 기운값으로 2천 원을 지불하고 20분 뒤 김이나는 팥죽을 식탁에 올렸다. 훌훌 불면서 따끈한 팥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넣었다. 이렇게 맛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록 만족스럽게 먹었다. 속이 든든해졌다. 뜨거운 음식을 먹었는데 시원하고 편안해졌다. 죽을 사다 줄 사람도, 끓여줄 사람도 없을 때 배달죽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죽 한 그릇이 뭐라고 없던 기운이 잠시 불끈 솟아난 듯했다. 죽 한 그릇이 나를 살린 듯했다. 아플 때면 어느 때보다 입맛을 살릴 색다른 음식이 필요하다. 쓴 약보다 온기가 살아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죽 한 그릇으로 충분했다. 기억에 남을 배달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