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02
아들 생일을 맞았다.
본인은 별생각 없어 보이나 엄마는 스마트폰 갤러리를 뒤적이며 지난날을 되돌아보았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시간들이 언제 다 지나갔는지, 문득문득 놀랍기만 하다. 차곡차곡 쌓인 경험이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으로 가슴속에 새겨졌다. 태어난 자식보다 배 아파 낳은 엄마가 그날을 잊지 못하는 이유를 차츰 알 것 같다.
30대 중반에 첫 아이를 출산했다. 난생처음 '나도 엄마가 되는구나'라는 설렘과 긴장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출산만 생각할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달 전, 날벼락을 맞은 듯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가 응급실에 계시면서 친정은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정집에서 엄마 수술 결과를 기다리며 하룻밤을 보낼 때 양수가 터진 것 같은 축축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근처 병원을 찾아야 했다. 진료 기록이 없는터라 검진받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에게 별 문제가 없다는 말에 양수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뒤로 출산까지 이중삼중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첫 출산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임신 중, 전치태반을 진단받아 제왕절개를 고려할 상황이었지만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고맙게도 아들은 정상 분만 위치로 돌아섰다. 출산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남다른 운동신경 덕분에 엄마가 수술을 피했다고 자랑스러워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같은 전치태반의 운명이었던 동생은 수술을 통해 세상에 나오면서 엄마를 더 아프게 했다는 것을 힘주어 강조했다. 운동 신경과 전치태반 사이의 연관성을 우리 중 누구도 설명할 수 없으니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다. 어떤 힘으로 그렇게 되었는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았다.
아들은 정확히 예정일에 태어났다. 책이나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본 그림처럼, 진통을 느끼고 양수가 터져 벌벌 떨고 긴장하며 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그림을 머릿속으로 자주 그렸다. 닥치면 되겠지 하면서도 시뮬레이션을 그려보곤 했다. 신기하게도, 그런 불안과 걱정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전날까지도 몸에 어떤 특별한 변화를 느끼지 않았지만, 병원의 지시대로 그날 저녁 출산준비를 편히 마쳤다. 살짝 잠들었다가 10시쯤부터 드디어 진통을 느꼈다. 이런 게 진통이구나 싶을 생소한 고통으로 정신없이 괴로웠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아들을 만났다. 2박 3일 진통으로 고생했다는 전설적인 시누이의 출산에 비하면, 서너 시간가량 걸려 겁 많은 내가 순조롭게 출산했다. 2.9킬로의 남편 팔뚝보다 작은 아이를 만났다. 뱃속에서 나온 뒤에도 크게 아프거나 속을 썩이지 않았다. 3개월의 출산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엄마를 대신해 이모님 손에서 자랐지만 무탈하게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뱃속에서부터 효를 실천한 아들. 새삼스레 아들이 온 그날이 어느 생일보다 생생하게 떠오른 하루였다. 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마음껏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