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04
"언니, 이거 아침에 만들어서 아직 김이 안 빠졌어요. 맛은 별로인데. 언니가 오븐이 없다길래 만들어봤어요."
운동하러 가는 길, 체육관 입구에서 만난 친한 지인이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고구마향이 틈새로 빠져나와 공기 중에 은은하게 퍼졌다. 유독 그날따라 남편과 아이들이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씻고 아침 먹고 썰물처럼 나가는 통에 이리저리 셋을 챙기느라 내 영혼도 같이 빠져나간 듯 힘없이 집을 나왔는데, 순간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나를 생각해 준 사람이 있구나라는 사실만으로 내겐 너무나 크나큰 감동이었다.
요리를 잘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하기를 주저한다. 항상 꿈처럼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홈베이킹을 시작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가며 가족들에게 다양한 음식을 해 주고 싶다. 가끔 맘카페에 금손인 주부가 잘 차려 놓은 음식을 자랑하듯 게시해 놓은 것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다. 나에게는 없는 자질이기 때문이다. 재료 손질을 시작으로 만들고 뒷정리로 이어지는 전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난 주저한다. 공기 빠진 풍선처럼 진이 빠져버린다. 음식은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투자일 텐데, 잘 알면서도 선뜻 손이 안 간다. 잘 못하니까 안 하게 되고, 안 하니 못하는 악순환이 따로 없다. 그러니 크게 변함없는 수준으로 살고, 기본에만 충실하니 눈이 휘둥그래 떠지는 밥상을 만들지 못하는 걸 백배 고개 숙여 인정한다. 더 늦기 전에 해 보자라고 가끔 스스로 반성과 결심을 하지만 솔직히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이라도 요리를 하면 좋으련만, 그는 나보다 더 관심이 없다. 우리 부부는 부엌에 서 있는 시간에 독서나 운동하기 같은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남이 해 준 것을 가끔 받아 들 때면 저절로 숙연해지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버린다. 준 사람은 큰 뜻이 없다 해도 혼자 과분해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지인 중 하나가 빵집에서 파는 깨찰빵을 밀가루 없이 건강식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한 뒤에 운동 친구들에게 레시피를 공유했다. 너다섯 줄짜리 간단한 레시피로 봐서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과 환상을 심어줄 만했다. 삶아서 으깬 고구마에 타피오카 가루를 섞어 반죽해 오븐에만 넣으면 된다고 했지만 선뜻 자신이 없었다. 큰 맘먹고 만들겠다는 생각도 없었지만 설령 만든다 해도 "건강식"이라는 말에 먹을 사람은 나뿐일 것을 자각하면서. 제대로 된 오븐 없이, 오븐 겸용 전자레인지만 있어 만들기 어렵겠네라는 말을 웃으면서 흘렸었다.
그날 저녁, 운동 지인 중 한 명이 단톡방에 깨찰빵 인증샷을 올렸다. 비주얼이 시판 깨찰빵 느낌이라며 다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훌륭했다. 다음날 아침, 가장 친한 지인이 본인도 만들었다면서 나에게 건넨 것이다. "맛은 없어요, 그래도 건강식이라고 생각해요"라는 멘트를 붙여서. 먹어보니 지인의 말대로 달달한 고구마 무스 같은 식감이었다. 예상했던 맛이라서 그런지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자주 있다면 별 거 아닐 테지만, 요리에 똥손이며 시간 투자에 인색한 사람에게 누가 만든 음식을 주었다는 사실이 뉴스거리였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건,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이가 들수록, 아니 자녀와 부모를 향해 돌봄을 주는 일이 일상이 되자 누군가로부터 전해지는 관심과 사랑이 서글프게 그리울 때가 있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며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접 음식이나 물건을 만들었다는 말만 들어도 마음속 저 깊은 곳까지 흔들린다. 마음이라는 땅에 지진이 나듯. 당연하게 받기만 했던 엄마의 딸로서가 아니라 타인과의 동등한 관계 속에서 받을 때 그 여파가 생각보다 오래도록 깊게 간다. 힘들어도,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만드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슬며시 다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