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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으로 시험에 들지 말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08

by 태화강고래

지난 일요일 저녁 7시, 2주에 걸쳐 치른 중간고사가 끝났다. 종이 치자 마자 학교밖으로 뛰쳐나가듯, 탄천을 향해 걸어갔다.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길을 성큼성큼 걷고 나니 굳었던 몸이 스르르 풀렸다. 두근두근거렸다. 이 나이에도 변함없이 시험이라는 통과의례 앞에서 긴장하다니 새삼 놀라웠다. 겉모습만 변하고 속은 10-20대로 회귀한 것 같았다. 학교가 아닌 집에서, 더구나 가족이 모여 있는 주말에,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아 시험을 쳤다. 낯선 시험 환경이었다. 과목을 클릭하면 화면에서 시험을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곧이어 60분이라는 제한시간이 째깍째깍 눈앞에서 흘러갔다. 객관식 문제라 쉬운 듯했지만 헷갈리는 문제들이 꽤 있었다. 예상치 못한 서술형 문제 공격에 맥이 탁 풀렸다. 한다고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보이자 바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첫 시험이니 어떤 방식으로 출제되고 진행되는지 경험하는 셈치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시험에 임했지만 종료 시간과 함께 순식간에 닫혀버린 웹페이지를 보는 순간 아쉬움이 앙금처럼 가라앉았다.


사이버대 특성상 시험이 공휴일에 잡혀있어, 주부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것 같다. 평일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주말은 바쁜 만큼 원망스럽기도 했다. 공부하고 시험 보랴, 식사 준비하랴, 간단한 집안일 하랴 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으련만,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주부도 이런데 직장인으로 공부하는 분들은 얼마나 바쁠까 싶었다. 학창 시절처럼 엄마가 신경 써 차려주는 밥과 간식을 먹으며 공부하던 때가 얼마나 복에 겨운 시절이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그땐 몰랐다. 공부만 하면 된다는 그 말이 부담백배로 나를 눌렀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그게 제일 편하고 쉬운 일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공부라 해도 가족의 도움 없이 해 나가는 게 시작부터 가시밭길처럼 느껴졌다. 주말이라고 집에 온 남편의 외조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엄마, 시험공부해야 돼."라는 말만 흘리고 지나치는 그가 불쑥불쑥 야속하기도 했다. 설거지 두 번 했을 뿐인데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도와달라는 말을 안 했는데 어떻게 남편이 자발적으로 집안일을 하겠나 싶으면서도 내심 기대한 내가 한심했다.


역시, 시험이 낀 공부는 온전히 기쁨만을 주지 않았다. 취미로 하는 지식 쌓기와는 마음이 달랐다. 시험이라는 장치 덕분에 인풋을 점검하는 생산적인 기회를 갖게 되지만 시간과 집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보니 점차 단맛에서 쓴 맛으로 변해갔다. 주부라는 꼬리표를 떼고 학생이라고 내세우자니 잘하고 싶은 마음만 앞서고 몸은 따르지 못했다. 상황이 변한 만큼 행동과 마음가짐도 동시에 변해야 했다. 중간고사 이후 다시 시작된 강의에서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시험으로 낙담하거나 공부를 포기할까 하는 나약한 생각을 하지 말라며 우리는 성인 학습자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그 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수에 연연하기보다 배움과 성장 그리고 목표를 위해 공부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던 불과 2개월도 채 안된 시점으로 돌아가 나를 보았다. 점수라는 좁은 틀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 공부를 시작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공부를 하면서 어떤 만족을 느꼈는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일단 시작했고 시험도 봤으니 계속 조율하며 나아갈 일만 남았다. 지속할 용기와 유연성이 필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가족들에게 손을 벌릴 것이다. 혼자 움켜쥐고 스트레스받는 것을 줄여나가는 법도 찾아갈 것이다. 공부를 대충 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도한 스트레스에 파묻혀 본질을 망각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 차차 나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다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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