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07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다짜고짜 덥다며 핑크색 니트 반팔을 입은 한 여인이 장바구니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급습당한마냥 난 어리둥절했다.
"우리 언니예요."
가발집 사장님은 그려려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밥 막 해왔어. 먹자. 따끈해.
파김치도 맛있고 머위나물, 콩나물, 미나리 무침도 해 왔어."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이었다. 순식간에 자매의 만남을 다룬 연극을 홀로 관람하게 되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언니라는 은근슬쩍 사장님의 설명이 내레이션처럼 지나갔다. 나긋나긋 이야기를 주고받던 분위기는 온 데 간 데 없고 빠른 리듬을 타는 상황극으로 변했다.
"밥 먹고 가요. 여기 반찬 다 있으니 같이 먹어요."
속으로 잠시 망설였다. 초면인데 먹는 게 나을지 정중히 사양하는 게 좋을지... 사장님과는 커피와 빵은 나눠먹는 꽤 편한 사이가 되었지만 그녀의 언니가 새참처럼 싸 온 밥까지 한자리에서 먹을 수 있을까? 사장님 언니가 잠시 자리를 뜬 사이 일단 안 먹겠다는 뜻을 전했다.
"제가 밥까지 먹기에는 부끄럼을 타서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마음으로 먹은 셈 칠게요."
"그래요? 먹고 가요. 우리는 상관없는데. 우리는 이 사람 저 사람 상대하다 보니 아무렇지 않아요."
염색약을 바르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 사장님 언니는 신속하게 음식을 꺼내 테이블에 펼쳐 놓으셨다. 11시가 막 넘은 시간이었다.
"여기 젓가락 있어요. 밥은 얼마만큼 드세요? 파김치도 드시고. 머위는 내가 산에서 직접 캔 거예요."
"점심을 벌써 드세요?"
"우린 아무 때나 먹어요. 먹어봐요."
발을 빼기엔 이미 늦었다. 안 먹겠다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챙겨주시는 젓가락을 받아 들고 서리태가 반쯤 덮은 흑미밥 위에 파김치를 넣어 한입 먹었다. 알싸한 맛에 입맛이 돌았다.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머위나물 특유의 맛이 더해져 먹다 보니 금세 먹었다. 안 먹었으면 서운할 뻔했다.
"다 유기농이에요. 더 먹어요."
자연식이 따로 없었다. 가공식보다 자연식을 선호하는 내 입에도 딱이었다. 대충 먹어도 개운하고 든든한 엄마표 음식맛이랄까. 음식도, 사장님의 언니도 자연인이었다. 대치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한다는 언니분은 동생에게 밥과 나물을 주고 싶어 오셨다고 했다. 우리 자매처럼 꽤나 성격이 다르다 했지만 챙기는 마음만은 누구도 말릴 수 없어 보였다. 언니의 보살핌과 함께, 어릴 적 부모님 고향에서 이모들과 동네 아주머니들이 내뿜으시던 훈훈한 인심이 오랜만에 느껴졌다. 고상하며 정돈된 분위기값이 음식값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브런치보다 콩밥에 파김치를 나눠먹은 아점이 잠자고 있던 내 신경세포들을 깨우는 듯했다. 조용히 염색하고 집에 가서 혼밥을 먹었을 텐데, 특별 이벤트 같은 그녀의 등장으로 색다른 아점을 먹고 돌아왔다. 살아 숨 쉬는 자연산을 맛보고 나니 축 쳐져 있던 어깨도 봄날의 향긋한 싹처럼 곧게 펴졌다.
* 파김치 이미지는 셔터팡 음식사진촬영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