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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남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14

by 태화강고래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남편의 생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진다.


"이번 생일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대신 파인트 세 개를 사는 게 어떨까?"


내 제안은 실행으로 이어졌고, 세 명 모두를 200프로 만족시켰다.


생일이면 나와 딸은 빵케이크를, 남편과 아들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주로 선택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행사용으로 적합하니 매번 생일이나 기념일마다 별생각 없이 샀다. 눈을 즐겁게 하는 매력에 기념사진까지 잘 나오니 없으면 허전할 정도였다. 그러나 눈에서 입으로 옮겨가면, 양에서나 취향에서나 만족스럽지 못했다. 3만 원을 넘는 가격을 지불하고도,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덜 맛있는 것을 양보하고 조금이라도 더 먹고 싶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눈치였다.


"네가 먹어, 이거 내가 먹을게. 아무도 안 먹으니 내가 먹을게."


셋의 대화는 매번 이렇게 이어졌다.


그랬던 우리 집이 달라졌다. 케이크를 파인트로 바꿨을 뿐인데. 분위기를 버리고 실용성을 택하니 셋이 다 싱글벙글.. 각자 한 통씩 앞에 들고 세 살 먹은 아이처럼 행복해했다.


딸은 쿠키 엔 크림, 슈팅스타, 엄마는 외계인

아들은 쿠키 엔 크림, 슈팅스타, 망고탱고

남편은 아몬드봉봉, 피치요구르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여전히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그땐, 나도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었기에 흔쾌히 아이스크림 데이트를 즐겼다. 더운 여름에 만나기 시작했으니 더위를 식히려는 작은 배려쯤이라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스크림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지금도 퇴근길에 아이스크림을 사서 아이들과 정을 나눌 정도로 입안에서 느끼는 달콤함과 시원함을 사랑한다.


그의 생일날,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갑자기 옛 생각이 났다.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그는 변한 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사람은 변한다 하는데, 나이가 든 것 말고는 그리 많이 변한 것 같지 않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성격 덕분에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고목 같다. 변한 건 고목에 기대어 있는 나인 것 같다. 때로는 말없이 지켜만 보는 나무에 답답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우리가 잘 헤쳐 나온 게 아닐까 싶다. 결혼 1년 후부터 친정 풍파에 휘둘리고, 회사에서 상처받고, 암에 휘청거리는 내 옆에서 지금껏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느니 말이다. 한결같은 그를 두고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에게 잘하라고 할 정도이다. 둘 다 흔들렸으면 원만한 가정생활이 힘들었을 텐데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그 덕분에 오늘의 우리 가정이 있는 건 아닐까. 원하는 맛을 원하는 대로 음미하는 그는, 사춘기 아들과 다름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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