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특별한 그녀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0

by 태화강고래

시누이를 소재로 글을 써도 될까 잠시 망설이다가, "내겐 너무 특별한 그녀"라서 자랑해도 될 거 같아 자판을 다다닥 두드렸다.


내가 유일하게 밥을 얻어먹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시누이이다. 남편의 여동생으로 나보다 한 살 많다. 여러모로 언니가 맞고 난 동생 같다. 친구들과는 주거니 받거니 하고, 친정에서는 장녀라 보통 먼저 지갑을 여는데, 어렵고 불편하다는 시누이와 밥 먹을 때는 거의 얻어먹는다. 그 세월이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남매 사이가 돈독한 집에서 자란 남자와 결혼을 했다. 알고 보니, 시누이가 오빠를, 아픈 엄마 몫까지 오빠를 살뜰하게 챙겨서 관계가 좋았던 거였다. 그런 시누이는 30대 후반까지 혼자 있다 결혼한 오빠를 구해줬다고 생각한 나를 새언니로 깍듯이 잘 챙겨줬다. 지금도 변함없이 그렇다. 1년 가까이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다.


오후에 휴가를 냈다며, 오전에 톡을 남겼다. 같이 밥 먹자고.

약속 없으면 보통 혼밥, 집밥하는 내 대답은 흔쾌히 예스였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그녀는 한식으로 골라 식당 몇 곳을 보낸 뒤 고르라 했다. 묵은지 닭볶음탕, 생선구이, 집밥 중 하나로. 우리는 묵은지 닭볶음탕으로 선택해 근처 식당으로 갔다. 같이 마주 앉으니 항암 받던 때가 생각났다.


당시 울산에서 경기도 병원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러 다녔는데, 새벽기차를 타고 올라오느라 피곤한 내게 매번 따뜻한 밥을 사줬다. 항암 주사 맞기 전 힘을 내야 한다고, 삼계탕, 닭볶음탕, 제육볶음 같은 고기가 들어간 점심을 3주에 1번씩, 6개월간 샀다. 2시간의 주사약 투여가 끝나면, 시누이 집으로 갔다. 항암주사를 맞고 바로 울산행 기차를 타고 가기가 힘들어, 조카방에서 하룻밤씩 자고 가는 신세까지 졌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남자조카들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비니를 쓰고 있던 나를 볼 때마다 "숙모, 머리는 좀 자랐어요?"라고 천진난만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쓰고 간 가발을 장난스레 써보기도 했다. 친정의 도움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던 내게, 시누이는 항암이라는 힘든 인생의 순간을 함께 보낸 가족 이상의 존재였다.


나를 챙겨주는 언니 같은 존재이면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선배 같은 존재이다. 친정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 나에게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언니, 우리 각자 엄마한테 잘해요."


시누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효녀이다. 어릴 때부터 아픈 엄마를 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엄마 챙기는 일은 누구보다도 잘한다. 그런 딸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손과 발이 되어 20년 넘게 부모를 보살핀다. 결혼 후에도 매 주말마다 친정에 들러 부모의 건강을 살피고, 필요한 일처리를 하고, 먹을 것을 챙겨서 간다. 변함없이. 그 덕분에 며느리인 나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고 산다. 아픈 후에는 아예 내 건강만 신경 쓰면 된다고 하시니 가끔 안부 전화드리고, 뵈러 가는 것만 한다. 혹시라도 지칠 때는 없냐고, 묻는 내게, 그녀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아뇨. 그런 적 없어요. 엄마가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 내가 더 신경 쓰며 사는걸요"


나는 뜨끔했다. 엄마에게 보살핌만 받다가 10여 년 넘게 엄마를 돌보며 사는 나는, 부끄럽게도 가끔 지친다. 아프기 전까지 매일 병원에 들러 엄마와 간식을 먹으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불가피하게 울산에 살 때는 경기도 병원으로 진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엄마 얼굴이라고 보고 내려갔다. 그런 시간들이 언제 다 지나갔는지, 지금은 체력과 경제력이 정확히 13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서서히 감소해 버렸다.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속으로 부끄러웠다. 반성의 물결이 나를 덮쳤다. 그저 나만 보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미안해요. 더 신경 쓸게요.'


물론 시댁과 엄마의 상황은 전혀 비교가 안된다. 동등한 비교가 될 수 없기에 그녀와 나의 부모 돌봄도 동일하게 평가하거나 평가받을 수 없다. 비교해서도 안된다. 그런데도 그녀의 변함없다는 태도는 잠깐이었지만 반성의 시간을 주었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말이다. 나는 왜 변함없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나를 되돌아본다. 글의 힘인가 보다. 나를 돌보면서 엄마도 돌보는 힘을 얻는다. 고작 1년을 더 살았을 뿐인데, 그녀는 숫자상의 1년 말고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경험치로 나를 이끌고 있는 것 같다. 곁에서 보고 배우라고 그녀가 내게 온 건 아닐까. 돌아가신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을 그녀를 통해 보여주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론은 하나다. 아픈 엄마한테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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