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17
화와 원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왔다. 지옥 같은 내 마음과는 정반대로 바깥은 화창한 초여름 날씨였다. 산책 나온 사람들은 웃음이 가득해 보였다. 산책로 곳곳에 빨강, 노랑, 흰 장미가 눈을 사로잡게 피어나 5월은 장미의 계절임을 실감 나게 했다. 생명의 기운을 퍼트리는 초록의 물결 가운데 드문드문 보이는 장미꽃이 "힘내!"라고 토닥토닥 나를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꽃을 좋아하니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평정심을 찾고 나를 달래기 위해 나선 산책길이었다. 엄마의 생신을 맞이해 삼 남매가 모여 식사를 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게 끝이 났다. 그저 생일이라고 한자리에 모여 밥을 먹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어찌어찌 배는 채웠지만 공허한 느낌에 사로잡혀 정신은 구멍이 송송 뚫린 공 같았다. 이런 마음을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다. 함께 한 동생들은 물론이고 남편에게도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혼자 느끼는 고독한 감정 같았다.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여하니 과민하게 반응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혼자 알아서 풀어야 했다.
산책길 근처에 무인 북카페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들어가 봤다. 이런 곳이 집 근처에 있었구나 싶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중 "언제나 몇 번이라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음악이 흐르고 책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여성 한 분이 둘러보다가 곧 나가니 잠시나마 공간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었다. 신간과 추천 도서, 그리고 주인장 소장 도서, 아기자기한 소품들, 무인 카페까지 두루 갖춰진 알찬 공간이었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 마음도 같이 정돈될 것 같았다.
이런 날, 서점 주인이 있었다면 어색한 대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존재에 눌려 망설임과 불편함이 행동거지에 따라붙을 수도 있었지만 혼자라는 사실에 내 집처럼 자유롭게 책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잡고 몇 줄을 읽어 내려갔다. 평화로웠다. 시끄럽던 마음이 스르르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10분도 못 되자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 들어와 고요함이 깨졌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다시 햇살 속으로, 푸르름 속으로 걸어 나왔다. 마음이 흰 옷처럼 100프로 새하얗게 깨끗해지지는 않았지만 방구석에서 속을 끓이며 누구를 원망하는 것보다 역시나 좋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나는 산책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다. 산책길에 자주 쿼카북스에 들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