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22
한동안 아들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다 못해 덮을 정도로 길었다.
볼 때마다
"자르자, 자르러 가자."
돌아오는 답은 단호했다.
"다음에요."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소리 없이 흐르는 동안 머리카락만 눈에 띄게 자랐다.
마침내, 아들이 먼저 입을 뗐다.
"머리 자르러 가요."
"그래? 가자!
그런데, 30분 있음 문 닫겠어. 얼른 가자."
아파트 상가라 가벼운 마음으로 둘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자 미용실로. 가격이 착하고 집 앞이라 남편도 아들도 다니는 곳이다. 일요일 저녁, 남녀 미용사 두 분이 손님들의 커트를 하고 있었다. 기대에 차서 자리에 앉아마자,
"문 닫으니 내일 오세요."
남자 미용사는 쳐다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더 이상 어떤 말도 붙일 수 없어 그냥 멋쩍게 나왔다. 손님의 시간과 직원의 시간은 다르니, 조용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일찍 나올걸. 내일 와야겠네."
"내일은 안 돼요, 시간이 없어요. 수요일에 가요."
아들은 또 미루는 분위기였다. 집에 들어와 처음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자르기만 하는데. 내일 못 가면 거슬려서 답답하니 내가 조금 잘라볼까?"
"네, 엄마가 잘라주세요."
무슨 용기가 나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돌이켜봐도 모르겠다. 사실 유모차를 타는 아기일 때도, 유치원생일 때도, 아니 아들의 인생에서 한 번도 내 손으로 머리카락을 잘라준 적이 없었다. 한두 가닥 앞머리 정도는 집에서 자른다고들 하지만, 솜씨 없는 똥손을 쓸 용기가 없었다. 그랬던 나인데, 아들의 덤불 같은 앞머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따라. 그래서 떨리는 마음을 안고 가위를 들었다.
"싹둑싹둑"
단칼에 잘리지 않는 물체처럼, 속이 알차게 앉은 배추처럼, 아들의 숱 많은 머리카락은 정말 한 번에 자를 수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좌우를 맞추며 잘라냈다. 그리고 몇 십분 뒤 가위를 내려놨다. 머리카락이 주변에 흩어져있었다. 긴장한 탓에 허리도, 팔도 아팠다. 눈도 침침했다.
그런데...
집에서 자른 티는 숨길 수 없었다. 프로와 왕초보의 차이가 이토록 분명했다.
"일단 자르긴 했어. 학교 가면 친구들이 놀릴 수도 있겠는데. 내일이라도 미용실에 가자, 응?"
"상관없어요."
그렇게 학교에 다녀온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친구들이 머리 잘랐다고 알아보지?"
"네, 다들 웃어요."
"선생님은 속으로만 웃으신 거 아닐까?"
"그런 거 같아요."
"역시... 안 되겠다. 오늘 미용실에 가자. 원하는 거 해 줄 테니 가자, 제발."
"그럼, 치킨 사주세요."
치킨 한 마리의 위력을 다시 실감했다. 치킨값이 아깝지 않았다. 수요일에서 월요일로 당겨졌으니. 미용실에 앉자마자,
"네가 잘랐니?"
멀찌감치 앉아있는 내 귀에도 또렷하게 들렸다.
"네."
들릴 듯 말듯한 아들의 목소리도 뒤따랐다.
"그래도, 엄청 못 자르지는 않았네. 다음부터는 미리 와서 잘라."
그렇게 아들의 머리 자르기 작전은 끝이 났다. 위풍당당하게 미용실을 나선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잘랐는데, 왜 네가 했다고 했어?"
"엄마가 한 것보다 제가 한 게 나을 거 같아서요."
"그래, 엄마가 창피할까 봐, 엄마 보호해 준거야? 고마워. 다음부턴 제발 때 되면 커트하자. 날도 더워지는데."
그렇게 아들의 정돈된 앞머리와 전체적으로 시원하게 깎인 머리를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후련했다. 할 일을 마친 부모의 마음이랄까. 여기에 더해, 어느새 엄마보다 더 커버린 아들의 넓은 등이 더욱 듬직해 보였다.
다음날, 하교한 아들이 말했다.
"엄마, 오늘도 학교에서 머리 잘랐다고 한 마디씩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