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23
설레고 기대했던 인생 첫 파자마파티가 꽤 만족스러웠는지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느라 바빴다. 친구들과의 하룻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말하는 것을 봐도 그때의 흥분이 완전히 가시진 않은 듯 보였다. 생일을 맞은 친구를 포함해 여섯 명이 거실에서 놀고먹고 게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나를 쳐다봤다.
친구 엄마들은 젊은데, 엄마도 일찍 낳지 그랬어요?
딸아이가 대뜸 말했다. 사실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닌데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반성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이들은 엄마 나이를 자연스레 의식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말보다 눈으로 즉시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젊은 엄마는 티가 난다. 눈에 띄는 탱탱한 피부와 분위기로 나이 든 엄마를 저절로 고개 숙이게 만든다. 젊음이라는 방탄 갑옷을 입은 듯 당당하다.
첫아이 때는 그럭저럭 왕언니라는 타이틀을 걸치지 않았다. 그런데 둘째 아이 친구 엄마들 앞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당연히 큰 언니뻘이다. 최소 5살부터 12살까지, 나이 차이가 꽤 났다. 울산에 살 때는 띠동갑 엄마가 있을 정도였다. 20대 초중반에 출산한 엄마들. 난 그때 뭐라도 해보겠다고 고민, 실행, 실패의 도돌이표를 찍으며 인생 시간표에 결혼과 출산이라는 선도 긋지 않았을뿐더러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았던 때였다. 뭐라도 해보겠다는 꿈만 꾸고 살다 보니 시간이 흘러갔다. 자기만족이라고, 하고 싶은 대로 시도해 봤으니 내 입장에서 크게 후회는 없다.
다만, 아이 입장에서 노산 엄마로서의 단점은 피할 수 없다.
딸과 나는 띠띠띠동갑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특별한 우리 사이인데, 35살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애를 낳고 키우느라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지금도 그렇다. 쌩쌩하게 날렵하게 거뜬하게 아이를 키울 만큼 활력이 충분치 않다. 당연히 개인차가 있겠으나 내향인으로서 더욱 안팎으로 에너지가 부족하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말과 행동을 능동적으로 하지 못하고 쉽게 방전되는 게 문제였다. 우리의 미래 역시 풋풋한 젊은 엄마가 딸과 친구처럼 티격태격 살아가는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이 든 엄마를 둔 딸은 채울 수 없는 젊은 엄마 결핍을 갖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는 교육비 지출이 증가하는 만큼 노후 준비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에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을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노산으로 인한 단점만 있는 것 같다. 특히 아이 입장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하지만, 모든 게 때가 있다는 말처럼 숫자가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이 중요한 건, 나이 든 엄마든 젊은 엄마든 자녀에 대한 사랑은 같지 않을까 싶다. 더 다행인 건 인생에 정답이 없으니 내가 선택한 길을 상황에 맞게 걸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아이 친구 엄마가 젊다고 해서 잠시 비교당할 수는 있지만 그녀가 살아온 인생과 내가 산 인생을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나이 든 엄마로서, 건강에 더 신경 쓰고 더 소소한 행복을 주고받고 살면 충분하지 않겠느냐고 딸에게 말을 보태면,
엄마가 더 나이 들었어도 괜찮아.
그래도 죽지 않고 곁에 있으니 다행이야.
난 행복해.
부러워하다가도 이렇게 말해줄 때면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사랑해 줘서 고맙다며 서로를 향해 손하트를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