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명품 엄마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25

by 태화강고래

시어머니 팔순생신에 다녀왔다.


예약한 식당으로 남편이 부모님을 모시고 먼저 출발한 사이 우리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시누이와 나, 그리고 딸아이 셋이서 거실에 테이블을 놓고 파티 대여 용품을 사진대로 재빨리 세팅했다. 포장 박스를 열고 뽁뽁이를 벗겨내는 작업은 딸아이 담당이었다. 키가 큰 나는 "산수연"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는 플래카드를 거실 창에 테이프로 꼼꼼하게 붙였다. 시누이는 총괄 매니저 역할을 했다. 이벤트업체 직원이 된 양 우리 셋은 후다닥 산수연 잔치상을 흐뭇하게 차려놓고 식당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치고 먼저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내 테이블에 올리며 어머니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VIP 등장 전 긴장하듯 배치와 간격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다른 식구들에 이어 마지막으로 등장하신 어머니를 향해 손자손녀를 포함해 총 8명이 박수를 치며 환영해 드렸다. 여기에 더해, 이벤트라고는 없는 집에 뚝딱 차려진 핑크빛 산수연상은 어머니께 깜짝 선물이 되었다. 연한 핑크색 블라우스를 입으신 어머니와도 참 잘 어울렸다.


언제 이런 걸 준비했어? 전혀 몰랐네.

엄마, 케이크 좀 봐. 명품 엄마.

명품 엄마?

엄마, 명품 엄마잖아. 명품!

모녀는 명품이라는 그 말을 여러 번 주고받았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도 기분 좋게 물들었다. 어머니가 등장하시기 전, 샤넬 케이크를 처음 본 순간, 솔직히 웃음이 났다. 선명한 로고에 누구나 아는 명품이 케이크 데코레이션에도 등장하다니, 행사용 맞춤 케이크를 자주 접하지 않은 촌스러운 사람임을 백번 인정할 때, 먹음직스럽거나 예쁘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를 보고 시누이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참 특별한 케이크를 만들었구나 싶었다. 장난기가 섞인 듯한 명품 케이크를 다시 쳐다보면서 시누이가 이 디자인을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라 정확한 의도는 모른다. 철들고 나서부터 엄마를 살뜰히 돌보는 그녀의 마음속 깊은 진심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팠던 엄마를 보고 자란 시누이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을까? 그런 엄마가 80세 생신을 맞이한다는 게 기적같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환갑과 고희연은 들어봤는데, 80세 생신을 산수연이라고 부른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이렇게 특별한 날인 만큼 평소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식구들을 잔치상 뒤로 불러 기념촬영을 하게 하고, 딸아이와 같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버님과 나란히 앉으신 어머니는 가족들이 부르는 생신축하 노래에 손뼉 치며 호응을 하셨고 마지막으로 기분 좋게 촛불을 끄셨다. 아주 달달한 샤넬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다들 웃고 떠들었다. 흐뭇해하시는 어머니를 보자 어제까지 무거웠던 마음이 슬그머니 가벼워졌다. 생신을 앞두고 약간 상했던 마음을 다 털어버렸다. 시댁일이라면 시누이가 99퍼센트를 알아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난 며느리로서 딱히 하는 일이 없다. 그런 나인데도 특별한 올해 생신만큼은 같이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 몇 달 전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었다. 며느리의 의무라기보다는 그냥 뭐라고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지만 혼자만의 마음이었다. 평상시대로 시누이는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고, 알아서 혼자 하는 게 편했는지 생신 며칠 전에야 계획을 알려줬다.


특별한 날에라도 며느리 역할을 하고 싶은 내 속 좁은 이기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랄까, 그 쓸데없는 욕심이 불현듯 치밀었던 것이다.


'내 엄마의 생신상이니 내가 차리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왜 미쳐 알아주지 않았을까.

서로 의견을 물으며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딸로서 하고 싶은 대로 못할 수 있어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라는 그 위치는 고정적이다. 변할 수 없었다. 딸이 알아서 하는 게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서로 편하면서도 가끔 쓸데없는 마음에 서운하다. 그 자리를 나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어머니를 바라보자는 다짐을 새롭게 했다. 내 방식대로 어머니의 며느리가 되자고. 언젠가는 명품 며느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환하게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뿌듯한 하루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타벅스 속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