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에게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18

by 태화강고래

D에게


오래간만에 얼굴 봐서 좋았어. 벌써 지난여름이야.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갑작스럽게 네 회사 근처로 찾아가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헤어졌었지. 내겐 무지 특별한 친구이니까. 그 이후로 네 안부가 궁금했어도 카톡을 쓰다 말다 망설이다가 기다렸어. 워킹맘인 네가 바쁠 테니 연락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바쁜 게 끝나서 좀 시간이 나니 만나자는 연락을 줘서 고마워. 오래간만에 만날 생각에 들떠있었어.


여전히 공무원계의 히피 같은 옷차림을 하고 나타난 네가 반가웠어. 감기기운이 있다고 피곤해하면서도 나를 보러 와줘서 고마웠어. 속풀이 하자고, 미역국집에 들어가 뜨끈한 국물에 속을 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좋았어. 특히 잊고 있던 독일 연수소식을 알려줘서 무지 기뻤어. 축하한다고, 잘되었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말 못 한 부분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에 쓰고 있어.


벌써 5년 전이네. 남편의 습관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내게 조심스럽게 너의 가정사를 이야기해 줬지. 남편이 우울증으로 방구석에 3년째 들어앉아 있다고. 믿을 수 없었어. 너희는 동아리 선후배로 만난 대학 CC였고, 연애 후 제일 먼저 결혼한 커플이었으니까. 결혼 후에도 알콩달콩 잘 살아서 우리들이 참 많이 부러워했었는데. 그때 처음 독일연수 이야기를 했었던 걸로 기억해. 당장 이혼하고 싶어도 이혼절차가 너무 복잡해서 안되니 차라리 떨어져 지내고 싶어서 연수 준비를 시작했다고. 독일어 시험을 보고, 연구계획서를 제출해야 해서 쉽지는 않겠지만 도전할 거라고 했었지. 두 아이를 둔 엄마로서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었을까. 나라면 어땠을까.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만 해 줬어. 내게 결혼생활에 대해 털어놨을 때는 이미 남편과의 갈등이 절정을 지났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늘진 얼굴이 맘에 걸렸어.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간간히 독일어 시험공부는 잘 되어가냐는 물음에 시간이 없어라고 대답하더니. 드디어 해냈구나. 남편과의 어색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끊을 수 있겠구나 싶어 내 마음이 다 후련했어.


여기까지만 하면 좋았을 텐데. 내 마음 한 편에는 다른 속마음도 있더라. 시작이 반이라는 말과 목표가 생기면 어떻게든 이루게 된다는 말이 실감 났어. 동시에 숨길 수 없는, 부인할 수 없는 초라함도 느껴졌지. 너의 지난 5년과 나의 5년이 갑자기 비교가 되더라. 직장생활과 가정생활로 당연히 죽도록 힘든 시간이 있었을 텐데, 그것들은 보지 않고 독일연수라는 눈에 보이는 성취를 보고 있는 내가 참 부끄러웠어. 나는 일을 그만두고, 암 치료하느라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데 꿈을 꾸고 성취한 네가 대단하고 부럽더라. 미안해. 전업주부여도 자기 계발을 하고 소득을 창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못하고 있으면서 부러워한 게 부끄러웠지. 나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중에도 인생의 교훈을 배웠는데 그것 또한 보이지 않으니 내가 헛산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 누구나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만나는 장애물의 종류와 크기가 달라 극복하는 방법도 기간도 다르니 무언가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임을 알면서도 그랬어. 완전한 인간도, 완벽한 결혼도, 완전한 행복도 없는데 말이야. 이런 마음도 잠깐 들었다고 고백해. 불완전한 인간이라 그려려니하고 이해해 줘.


결혼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함에도 우울해하지 않고, 네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보기 좋아. 내년 독일 가기 전에 자주 봤으면 좋겠어. 떠나면 너무 보고 싶을 거 같아. 항암 할 때 나를 지켜봐 준 내 친구야, 고향인 진주에 왔다가 울산까지 160KM를 달려 나를 보러 와 주었던 그 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대학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같은 조에 편성되고,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 나이 먹고 있는 우리잖아. 앞으로도 자유로운 영혼의 친구야. 네 꿈을 잃지 말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길 바래. 난 한국을 잘 지키고 있을게. 다음에 만날 때는 나도 새로운 소식을 전해줄게. 건강도 챙기면서 파이팅!




소중한 친구와의 짧은 만남을 기억하고 싶어 기록한다. 부끄러운 내 속마음과 함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