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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끄고 싶다, 자식채널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36

by 태화강고래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마냥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다. 엄마라는 옷을 입고 난 후부터 자유라는 두 글자가 때론 그저 글자로만 보인다. 아마 두 눈을 감을 때까지 엄마마음이라 부르는 그 바위를 품고 살 것 같다. 엄마가, 시부모가 그러하듯 부모는 늘 자식이 걸린다. 목에 걸린 가시라고 비유하자니 딱딱하고 날카롭고 차가워 정 떨어질 것 같다. 그보다 분명 덜 아프고 사랑스럽지만 그렇다고 시원하게 털어내 없는 상태로 되돌릴 수 없 묘사하기 어려운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스타벅스 한구석에 앉았다. 이른 아침시간에 왔을 땐 빈자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커피 한 잔 들고 바깥 벤치에 앉았었는데, 11시가 넘었다고 다행히 엉덩이를 붙일 딱딱한 의자가 여러 개 남아있었다.


일 년에 한 번 뼈스캔검사를 다. 발병 6년 차, 여전히 유방암과 난소암을 추적관찰한다. 뼈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약물주사 후 2-5시간을 대기한뒤 검사가 이루어지는 터라 주어진 3시간 동안 병원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유시간!

자유다!

이런 외침이 왜 안 나올까?


아이들 방학이고 남편 휴가라 뜨거운 프라이팬 앞에 서서 땀을 삐질삐질 흘릴 텐데, 병원 스벅에서 시원하게 놀면 좋은 거 아닌가? 카푸치노 앞에 두고 스마트폰 보는 건데 신선놀음 아닌가?


그런데 참 이상하다. 다가도 모를 내 마음. 점심 먹고 학원가는 아이들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게 되 찜찜했다. 대한 미안한 마음을 담아 밥과 국을 데워먹으라고 재차 말했지만 내 말은 공에서 사라졌다.


라면 있으니 먹고 갈게요.

필요하면 냉동피자라도 먹으면 돼요.


엄마가 없으니 인스턴트식품을 먹을 수 있는 당당한 명분이 생긴 터라 눈치 보고 먹을 때와 결이 다른 힘과 설렘이 말투에서 가득 느껴졌다. 한 끼인데 왜 미안해할까? "배 채우기 위해 뭐라도 먹으면 돼"라는 남편말처럼 나도 좀 편히 그 시간만 넘어가면 그만인데 마음은 늘 그렇듯 그렇지 못했다.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엄마도 아니고 다정한 엄마도 아니면서 왜 먹는 것에만 유독 걱정을 하는 티를 내는지... 알다가도 모를 나.


그러다 바로 몇 분 전 엄마와의 통화가 스쳐 지나갔다.

남편이 휴가니 같이 병원에 갔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그 말. 지겹도록 혼자 병원 다니는 딸이 애처로워 가끔 남편이라도 대동하고 가길 바라는 엄마다. 오히려 남편이 애들이랑 같이 라면이라도 먹는 게 좋다는 나와 내 고충을 내 건강을 눈으로 확인하길 바라는 엄마. 우리 둘의 차이다. 엄마는 내가, 나는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물은 거슬러 흐르지 않는다.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그게 순리라고 하더라. 집에 돌아와서 보충 수업하듯, 몇 시간 동안 내가 없던 흔적을 지우고 채우느라 한차례 땀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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