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35
엄마, 사랑나무 알아요?
그렇게, 딸이 검색한 사랑나무는 우리 여정에 포함되었다. 나뭇가지 하나가 하트모양을 나타내는데, MZ세대를 중심으로 SNS상의 핫플레이스란다. 그래, 우리도 사랑나무를 찾아가 인생사진 한 장 찍고, 소원이라도 빌어보자!
한여름, 햇살은 따가웠다. 온열환자가 속출하는 이때 우리는 동해바다 대신 부여와 공주를 택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백제인의 발자취를 다시 따라가 보기로 했다. 3년 전 여름휴가처럼. 부여 성흥산성 랜드마크가 된 사랑나무가 첫 번째 목적지였다.
성흥산성으로 알려진 부여 가림성은 백제 성곽 가운데 유일하게 축성연대(삼국사기 기록, 501년)가 알려져 역사적 가치가 높다. 부여 사비성과 금강 하구에 위치한 요지로 사비성을 수호하기 위해 동성왕이 축성했다고 전해진다. 성흥산(286미터) 정상부에 쌓은 석성으로 둘레 1500미터, 성곽높이가 3-4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가림성 입구 암벽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며 그 규모를 상상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대신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한 드론 사진을 통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성흥산성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검색 자료에 따르면, 키가 무려 22m, 가슴 높이 지름 약 5.4m, 수령 400년 남짓으로 202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에 압도되었다. 특히 돌출된 뿌리와 그 틈에서 자라는 갖가지 풀에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금강과 논산, 강경 같은 인접 도시까지 내려다보이는 확 트인 전망은 더위를 순식간에 가져간 듯했다. 투명한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듯 모든 게 선명했다. 언제까지라도 쉬었다 가고 싶을 만큼 넉넉한 그늘과 풍경에 푹 빠져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다. 하트 나무 가지는 한쪽으로 펼쳐져 있어 온라인상에서 보던 사진과 달라 보였지만 곧 깨달았다. 한쪽 가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편집하면 완성된 하트모양이 된다는 것을.
사랑나무를 만든 하트 가지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 둘레를 잴 수 없는 거대한 나무의 존재자체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한여름 33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만큼 성을 지키기 위해 굳건하게 서 있던 병사들의 치열함이 전해졌다. 나무는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해 땀 흘렸을 이름 없는 사람들의 노고까지도 갑자기 머리속을 스쳐갔다. 여름에는 얼마나 덥고, 겨울에는 얼마나 추웠을까.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속에서 땀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가림성의 수호신 같은 느티나무는 이제 사랑나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21세기를 살고 있다. 사랑나무를 찾아오는 우리 같은 관광객들을 맞이하느라 바쁜 가운데, 백제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굳센 의지와 부던한 노력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나 또한 사랑나무 덕분에 백제 가림성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