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37
며느리 생일이라고 30만 원을 입금하시고 카톡으로 메시지를 보내셨다.
예쁜 블라우스 사 입어.
전화를 걸었다. 바로 전날 한 시간가량 통화를 해서 그런지 딱히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 챙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만 간단히 드리고 끊었다.
올해도 반이 지나 세 번째 순서인 내 차례가 왔다. 아니 뭘 이런 걸이라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두 손으로 덥석 받아 드는 사람처럼 나도 계좌에 찍힌 돈을 자연스레 받았다. 네 식구 생일 때마다 밥 사 먹으라고 돈을 보내시지만 며느리 생일 때만큼은 옷을 사 입으라고 강조하신다.
예쁜 블라우스?
언젠가부터 매년 어머니는 강조하셨다.
예쁜 블라우스를 사 입으라고.
나이 들수록 옷을 잘 입어야지, 너무 없어 보이잖아.
농담반, 진담반으로
사실인데요, 학원비에 식비에 돈이 없는걸요.
그렇게 어머니와 주거니 받거니 했었다.
돈을 준 보람이 없잖아. 옷을 사 입어야지 남지.
그냥 생활비로 써버리면 내가 준 흔적이 안 남아.
그 말씀이 구구절절 맞다. 반박할 수 없다. 그래서 옷장에 "어머니표" 블라우스 하나 없다.
처음 옷 이야기를 하셨을 때가 떠오른다. 자식도 남편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몫을 챙기며 살라는 말씀에 울컥했었다. 엄마가 하는 말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엄마로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주부로서 하는 말이었다. 젊어서는 박봉의 공무원 남편의 아내로 생활하느라 콩나물 가격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사셨지만 이제는 남은 인생 다르게 사신다고. 본인 생일에도 잊지 않고 고기 미역국을 끓여드시고 수고한 당신에게 선물을 하신다. 인생은 짧다는 말씀도 잊지 않고 덧붙이셨다. 그때의 말씀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심어졌다.
누구보다 가계부를 치열하게 쓰셨던 분이라 주부의 가장 큰 고민과 도전이 무엇인지를 아신다. 그래서 어머니는 티 조가리를 입는 며느리의 일상에 화사한 블라우스가 기쁨이 되길 원하시는 것 같다. 주부의 마음은 주부가 아는지라 생일 때만이라도 통 크게 옷 한 벌 사 입으라고. 아이들 키우면서 원하는 옷을 제대로 사 입고 사는 엄마가 몇이나 되겠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다 맞는 말씀이다. 아이들을 우선순위로 놓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했던 것들은 서너 번 고민하다 어느새 슬그머니 쇼핑리스트에서 사라지는 게 빈번하니까. 다 알지만 여전히 머뭇거리다 말았다. 올해도 난 예쁜 블라우스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어차피 사도 입을 일이 없으니 대신 시원한 티하나 사 입었다. 까슬까슬해 좋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옷 하나 샀으니 대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