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69
이제 남은 건 소국뿐이다. 일주일, 열흘, 한 달 가까이 지나자 거실 곳곳에서 보이던 꽃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동시에 시들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서도 순서가 있는 듯, 릴레이 같았다. 성격이 제일 급한 장미가 1등으로 집을 떠났고 튤립과 카네이션도 열흘을 머무르지 않았다.
작년 말, 딸아이의 졸업식 덕분에 화사한 꽃다발이 생겼다. 주인공은 딸인데, 덩달아 내가 신났다. 꽃을 좋아하지만, "그냥" 살 수 없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꽃이 피겠지, 그날을 기다려야 했는데 엄동설한 꽃밭에 앉아 있는 것처럼 거실에서 은은한 향이 코끝에 전해졌다. 핑크 노랑 주황 보라. 장미 튤립 국화 카네이션 이름도 낯선 브바르디아까지. 연말 시상식의 주인공이라도 된 냥, 꽃다발을 들고서 지나간 2025년과 다가올 2026년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형형색색 큼직한 꽃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꽃다발을 풀어 화병에 나눠 담고 나서야 하얀 꽃이 눈에 들어왔다. 너도 있었구나! 찬란하게 빛나던 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떨구었고 잔해들을 남겼다. 하루하루 화병을 정리하다 보니 남은 건 앙증맞은 소국이었다. 작년에 시들어가는 노란 장미를 보며 느낀 것과 다른 감정이 차올랐다. 이처럼 오랫동안 화병에 꽃을 둔 적이 있었나? 스치듯 시선이 멈추면 풍경을 보듯 위안과 활력이 스며들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나도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존재처럼. 배경처럼 보였던 담백하고 수수한 꽃이 마지막까지 화병을 지키며 내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문뜩 우리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성취나 이벤트를 쫓으며 화려한 꽃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날마다 축제 같은 일상을 꿈꾸는 건 아닌지. 짧은 찬란함 뒤 남은 건, 빈 화병을 채운 느긋한 소국같이 여전히 단단하게 우리를 붙들고 있는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인 것 같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잔, 익숙한 사람들, 제자리를 지켜온 사소한 습관이야말로 보통의 날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오늘도 눈을 떠 화병 속의 소국을 보며 소박한 풍경이 곁에 있음에 감사한다. 단단하고 수수한 나의 하루를 정성껏 보살피며 살고 싶다고 살며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