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76
쟤들 요새 부쩍 친해진 거 같네.
안 싸우고,
이유가 뭐지?
2년 터울로 낳고 키우면서 힘든 시간은 어딜 갔는지, 둘 낳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오빠 따라쟁이가 되어 바비 인형대신 또봇과 공룡을 손에 쥐고 레고 블록을 쌓는 딸 곁에는 항상 아들이 있었다. 잘 데리고 놀았다. 뽀로로를 보고,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고, 몸을 흔들고. 혼자였다면 같이 놀아달라고 따라다녔을 텐데,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자랐다. 혼자 유치원 차에 탄 오빠를 따라가겠다며 울던 세 살 꼬마는 2년 뒤 오빠와 나란히 통학버스에 올랐다. 선생님들로부터 동생을 살뜰히 챙긴다는 칭찬의 말씀을 여러 번 들을 때마다 뿌듯했다. 어려도 오빠라고, 보호자라는 생각이 들었던지, 유치원 입구에서 딸아이의 신발을 챙겨 손 잡고 들어가던 뒷모습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랬던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각자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교류와 소통이 없는 듯 보였다. 역사와 축구에 관심 있는 아들과 댄스와 아이돌을 좋아하는 딸은 서로 소통할 공통분모를 찾지 못했다. 중학생이라고 동생을 잼민이로 부르며 화를 돋우기만 했고, 딸은 그런 오빠를 피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오빠가 학원에서 높은 레벨에서 공부를 하고 장난기를 누르고 하나둘씩 문제를 가르쳐주게 되자 오빠를 향한 눈빛이 조금씩 달라졌다. 높은 나무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부모가 하는 말은 잔소리로 해석되지만 오빠의 말 한마디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치유할 약처럼 받아들였다. 어느 날인가 상기된 얼굴로 오빠가 알려주었다는 영어독해 팁을 포스트잇에 간결하게 적어둔 것을 보여주었다. 책상 앞에 딱 붙여놓은 것을 보고 웃음과 함께 칭찬해 줬다.
조금씩 서로를 향해 다가가던 아이들은 다시 묶였다. 검정 체육복을 커플룩처럼 나란히 입고 같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삼 남매여도 초등학교를 제외하고 같은 학교에 다녀본 적 없는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들이 다니는 학교가 꽤 괜찮다는 경험치를 바탕으로 딸도 보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서로 불편함을 느낄까 은근히 신경 쓰였다. 세 살 이상 터울이 졌다면 이런 걱정도 없었을 테지만, 두 살 터울인지라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했다. 예상대로 첫날부터 형제자매가 재학 중인지 질문을 받고, 자연스레 누구 동생, 누구 오빠라는 정체성을 덧입고 생활하는 중이다. 하루하루 곤두섰던 감각이 무뎌지겠지만 선생님들도 아들에게 딸의 이야기를, 딸에게는 아들의 이야기를 학기초반에는 지나치지 않고 말씀해 주셨다고 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한 달 가까이 되어 간다. 매일 아침 셔틀을 타러 나가는 순간부터 서로에게 관심을 두지 말고 아는 척도 하지 말자고 약속했지만, 어찌 딱 잘라 무심할 수 있을까? 셔틀 출발 시간이 다되도록 안 나타나는 오빠가 신경 쓰여 좌불안석 창밖만 바라보는 동생의 마음을 오빠는 알까? 하필 급식을 먹는 시간이 엇비슷해 멀리서라도 급식실에서 지나치는 일은 다반사고, 얼떨결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 마주 보고 밥만 먹은 날도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어색했을까, 그때 참 미안했다. 빈 속을 채워줄 맛있는 급식을 즐겨야 할 점심시간이 참 불편했을게 빤히 그려졌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본능 같았다. 급식실에서 오빠를 보았다는 이야기, 오빠를 못 봤다는 이야기,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오빠를 봤다는 이야기 등으로 딸은 자신의 일상과 함께 오빠의 학교 생활 이야기를 덤으로 전했다.
이에 비해 아들은 별 관심이 없는지, 동생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성별의 차이인지, 성격의 차이인지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아들은 딸만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본능적으로 눈치껏 선을 지키며 학교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교과 선생님들과 학교 행사에 대해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딸은 오빠 찬스를 써 보려고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들은 딸이 교과목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선생님들에 대해 자신이 느낀 주관적인 평가는 자세하게 흘리지 않는 자제력을 보였다. 딸이 직접 경험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호응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 다른 중학교에 다녔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법한 공통된 화제가 생긴 덕분에 이전보다 자주 이야기를 하며 큰 소란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중 2는 지났는데 센 사춘기가 올지 아님 끝난 건지 알 수 없는 고요한 아들과 이제 막 사춘기에 올라탄 딸이 앞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부모의 바람을 담은 눈으로 아이들을 매일 바라본다. 성인이 되면, 특히 각자 가정을 꾸린 후에는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변할지라도 82억 인구 중에 같은 부모를 가진 단 둘이 험한 세상에서 서로를 잊지 않고 무탈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성장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이 내게도 어김없이 쌓여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