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5
부모가 되어보니 어른들 말씀이 맞았다.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부모 속을, 그 크고 깊은 속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겪게 된 크고 작은 경험이 매번 내 몸을 통과할 때마다 부모가 살았던 인생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단조로운 일상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의 70퍼센트가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에서 온다는 사실이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높다. 사랑스럽기만 하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대화의 주제와 관심이 학업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아빠는 어쩌다 9시 전에 퇴근하는 날이면 전화통을 붙잡고 친척들에게 자랑하느라 바쁘셨다.
"우리 딸이 또 1등 했어요."
"우리 딸이 외고에 붙었어요."
그랬다. 그 딸이 나였다. 중학교 때부터 엉덩이 붙이고, 문제집을 스스로 사서 풀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법 생딸이었다. 우등상을 받아오거나, 성적이 좋거나 하면 아빠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똑같은 멘트로 내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좋은 방방 뜨는 아빠의 목소리를 내 방에서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빠 좀 가만히 있지, 왜 저렇게 동네방네 떠들지? 부끄럽게.'
이제야 아빠의 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알 것 같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들이 평상시와는 다르게 공부에 집중하거나, 시험을 잘 보고 오는 날이면 내 기분이, 부끄럽지만, 좋다. 반대로, 기대했던 것보다 성적이 안 좋거나 하면, 어느새 내 기분도 같이 다운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로 기분이 좌우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를 다스리기 위해 책으로도 배웠다. 글로만 배운 건 읽을 때뿐이다. 매번 부딪히고 쌓으면서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깨달아야 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자식 키우는 부모의 기쁨은 자식이 공부를 잘해 주는 것이라는 게 점점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자식이 공부를 잘하면 본인의 능력인 양 어깨가 으쓱하다. 유튜브를 봐도 자식이 서울대에 가면 서울대 보낸 엄마의 공부법이라고 하는 영상과 책이 수두룩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자식이 공부를 해 줄리 만무하지만, 쓸데없이 기대하고, 실망하고, 화나는 상황이 발생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어 벌써부터 걱정이다. 학업을 사이에 두고, 자식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는 말도 있다.
자랑하던 아빠의 반대편에 엄마가 있었다. 수능시험을 망쳐 원하는 대학에 한 번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엄마는 한동안 실망의 늪에 빠져 집밖으로 나가길 꺼려했다. 서울 강북에서도 촌 같던 동네에 살면서 외고 다닌다고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는데 그런 딸이 재수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당시 패배자의 기분으로 1년을 학원에서 공부하는 건 나인데, 나를 격려해 주기보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는 게 나를 더 바닥으로 떨어지게 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 엄마의 상처받은 마음도 이제는 조금씩 이해가 간다. 부모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딸에게 큰 기대를 품었다가 우르르 무너져버린 꿈이 얼마나 참담했을지를. 자식과 부모는 각자의 인생을 본인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야 하지만, 자식만 바라보고 살다 보면 본인의 꿈을 투영시키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부모의 헌신으로 성장한 자식들과 부모의 불행한 결말의 대표적인 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가 떠오른다.
자식의 학업성취도가 부모인 내 기쁨과 슬픔의 원천이 되지 않기를, 내 안에서 적절한 거리 두기를 유지하며 감정의 극단을 오가며 살지 않기를 소망한다. 타인의 영향을 지나치게 받는 성격이라 나도 내가 걱정된다. 큰 기대는 안 하지만, 그래도 부모이기에 "기대"라는 헛된 꿈을 꾸다 깨서 상처받을 것도 무섭다. 돌봄 노동자는 아니지만, 가정 내 돌봄을 담당하는 엄마로서 두렵다. 자식의 대학 등급이 엄마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세상에서 엄마로 살게 되어 무섭다. 아이들에게 무서워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도전해 보자라고 힘을 실어주듯이 오늘은 나에게 내가 말해주고 싶다. 무서워하지 말자, 무서워하지 말자, 용기를 내보자, 결과보다 과정을 응원하며 내 자리에서 지켜보고 손잡아주자. 변함없이. 부모니까. 먼저 흔들리지 말고. 속으로 계속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