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고 위로받고
4시 30분에 혼자 귀가하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나를 엄청 좋아해 준다
돌봄교실이 좋다고 엄마에게도 늦게 늦게 오라고 할 정도이다.
엄마는 직장을 다니시니
이 아이는 집에 혼자 갈 수 있는 마지막 시간까지 남아 있다가 엄마와 통화를 하며 집으로 걸어간다.
그러다 퇴근한 엄마와 아빠랑 만나기도 한단다.
나는 마지막 친구들을 모두 보내며
이 아이를 교문까지 배웅해 왔다.
일이 바빠 며칠 못 데려다준 어느 날,
조용히 나에게 묻는다
"선생님.... 바쁘세요?"
"응 조금."
"왜 저를 교문까지 안 데려다주세요?"
순간 멈칫했다. 그래서 물었다.
"내가 데려다주니까 좋았어?" 물으니
"행복해요"라고 아이가 대답을 했다.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 앞에 내가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하던 일 딱 접고, 준비를 해서 나가는 일은 그렇게 맘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번거로움을 선택할 수 있었다.
퇴근하는 다른 선생님들이 한 번씩 묻곤 한다.
"왜 교문까지 데려다주냐"라고
난 그때 "아이가, 행복하데요"라는 말로 답을 주면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나 싶을 정도로
나의 모든 분주함과 귀찮음은 다 사라진다.
교문까지 걸어가는 짧은 시간,
아이와 나눈 대화는 주저리주저리, 깔깔 웃고, 재밌다.
그러다 아이가 어느 날 이렇게 말한다.
"집까지 데려다주면 안 돼요?"
"여긴, 선생님의 직장인데, 나는 그러면 너를 보지 못할 수도 있어. 짤려서 하하하"하니
"안 돼요" 한다.
나의 집처럼 교문 앞에서 "안녕히 가세요"인사를 하면, 못내 아쉬워하며 간다.
이 아이는 이제 곧 돌봄교실을 졸업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쉽다고 "겨울방학 동안도 한 번도 안 빠질 거예요"라고 말을 한다.
아이의 그런 마음이 오늘도 나를 세운다.
나를 애정해 주는 그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다시 알게 된다
나는 3살 때부터 엄마가 직장을 다녔다.
그 시절 엄마 없이 혼자 집에 있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이 소중하다.
제2의 지니를 키우고 있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사랑을 듬뿍 담아
"오늘도 수고했어." "사랑한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폭 안겨 "저도요" 한다.
키가 나만큼 크고, 덩치가 커진 아이들도 토닥이며 나에게 말해준다.
그렇게 3년을 아이들을 만난다.
그렇다고 미운 아이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외로웠을 제2의 숙진이에게
위로하듯 다시 마음을 다해 "더 사랑한다" 말을 건네려 노력한다.
나의 진심이 통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제2의 지니이들"을 위로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나를 위로한다.